큰딸 물건이 중고가 될 때
시골 사는 게 좋다. 예민한 귀를 가져서 잘 놀라는데, 조용해서 좋고, 게을러서 뭐 해먹는 거 싫어하는데 배달이 안 돼서 좋다(능력 밖의 일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데다가 나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옷도 참 대충 입고 다닌다. 며칠 전 순천에 갔을 때, 큰딸 옷을 훔쳐 입었다. 큰딸은 내 블로그를 보고는 자기 옷 입었냐며 묻더니, 이내 엄마 입으라고 선심 쓴다.
사실 이 옷엔 구멍이 났다. 구멍 난 채로 입고 다니려고 했는데 구멍이 뭐 묻은 걸로 보이는지 가족들이 떼어 주려고 했다. 그래서 게으른 나는 어쩔 수 없이 옷을 뒤집어 꿰맸다. 같은 색실이 없어서 최대한 비슷한 색인 갈색을 골랐다. 아뿔싸, 역시 난 똥손이다.
뒤집어서 꿰맸는데 앞뒤가 똑같이 티 나는 건 왜지? 뭐가 문제냐. 모르겠다. 그냥 입고 다니련다. 얼핏 보면 도둑 가시 붙은 거 같다. 가을과 어울리는 갈색이라 나쁘지 않은 거 같고. 혹시 몰라서 초록색 니트 조끼를 걸쳐 입었다. 확 튀는 초록색에 꿰맨 자리는 묻히라고 말이다.
소박하고 소탈하며 소소한 게 내 인생, 뭐 돈도 굳고 나쁘지 않다. 내가 독심술이 없어서 다행이다. 남들 속마음을 모두 읽는다면 난 정신병이 걸리고 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