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바람에 날린다

안개에 적신 내 얼굴

by 게으른 산책가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얼핏 비치는 해를 보니 돌아올 때는 볕이 굉장할 듯했다. 모자가 필요했다. 거실에서 몇 발짝 걷다 보니, 반바지가 어색했다. 앞부분이 넉넉했고 뒤는 걸을 때마다 낀 느낌이다. 아, 또 바지 앞뒤가 바뀌었구나.


며칠째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살았다. 계속 눕고만 싶었다. 퇴근하면 잠이 쏟아지고 아침이면 눈꺼풀에 잠금장치라도 했는지 떠지질 않았다. 오늘에서야 잠의 저주에서 풀리고 있다. 선선한 시간에 나서는 기쁨에 설레더니 이내 허당 짓이다.


안개가 바람에 날렸다. 내 눈앞에도 안개 알갱이가 있겠지만 건너편 산만큼 떨어져야 보인다. 난 아마도 안갯속에 있었을 것이다. 축축함이 느껴졌고 세수한 것처럼 눈이 뜨였으니까.


난 아침 산책이 좋다. 갓 씻은 물기 머금은 사과를 아삭 베어 문 듯, 아직 정돈이 덜된 채 서두르며 해맞이하려는 그 시간 말이다. 해맞이 하기 전, 새들도 어수선하여 소란스럽다. 바람 소리도, 물소리도, 모두 해맞이하기 전에 소란스럽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침 산책, 이르면 이를 수록 좋다. 사람 소리가 빠진 그 속으로 들어가면 내 발소리는 주인공이 된다.


벚나무 뒤에는 산이 있지만 온통 안갯속인 오늘

배경이 온통 하얗다. 덕분에 가까이 있는 것들이 도드라진다. 벚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었구나. 어제 동네 할머니를 만났다. 아주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너무 변한 모습은 씁쓸하다 못해 서운했다. 왜 그렇게 몸은 오그라들고 얼굴은 가죽만 남으셨나요. 인사를 받는 목소리엔 노쇠함만 남았다. 동네 유지로 살던 그녀의 젊은 날을 알고 있는데 이제 겨우 문밖을 나서는 노인이 되었다. 벚나무 연둣잎이 어느새 노란 잎이 된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 서운한 눈빛을 헤아리지 않고 그녀는 가던 걸음을 재촉했다.



내리막길을 걸으며 인디밴드 노래를 선곡한다. 힘들이지 않는 길에서 (열창하지 않는 듯한) 편한 곡을 듣고 싶었다. 음악은 내 산책길의 OST 곡이 되어주었다. 동네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렸다. 몇 걸음 걸어 나가니 뒤에서 나를 부르시는 아저씨, 호박 가져가서 먹을거여, 물으셨다. 단단한 애호박이 맛있어 보였다. OST 곡과 그 상황이 어울렸다. 뭔가 드라마 주인공 같아.


호박을 들고 마을을 관통한다는 것, 할머니들로부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일이다. 하,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신다. 얼굴 근육은 웃고 있지만 형사 같은 질문을 한다.

“호박은 어디서 났대?”

“아, 그 소 키우는 아저씨가 주셨는데요?”

“음, 문곤이 아버지. 잘했네 잘했어.”

무사히 통과했다. 할머니는 그제야 안심하고 골목길로 사라졌다. 나도 버벅거리지 않고 의심받지 않아 다행이다, 휴.

노래는 마침 카더가든의 ‘로맨틱 선데이’가 흘러나온다. 내 발걸음과 딱 맞는 노래다. 단단한 호박이 무거워서 호박 든 팔이 길어질 거 같지만 노래에 맞춰서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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