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책임
저번 주는 열심히 가습기를 돌렸다. 특히 막내가 오는 날에는 가습기에게 가혹할 정도로 쉴 틈을 안 준다. 막내에게 아토피가 있어서다.
‘아토피’ 이 단어에서 탁 가슴이 맺힌다. 어렸을 때 막내는 참을 수 없는 간지러운 지옥 맛을 봤다. 이런 문장을 쓸 때는 ‘한숨’을 토하게 된다. 직접 보고 겪지 않으면 모를 고통이다.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고생한다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임신 중 먹거리를 조심하지 그랬냐고.
두 말은 내게 확연히 다른 말로 다가온다. 전자는 담담하게 받았으며 후자는 가슴을 뾰족한 나뭇가지로 후빈 듯했다. 위로와 책임을 묻는 말, 이미 겪고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논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의미는 없고 상처만 남았다. 아주 깊게, 내가 기억력이 부족한 건망증 덜렁이라고 해도 잊지 못할 상처다.
어제 가습기를 씻어서 수건을 깔고 엎어놨다. 해도 뜨지 않아서 일광소독을 할 수 없어서다. 딸들 침구를 정리하고 옷가지를 정리한 뒤, 수건을 삶고 있다. 공교롭게 가습기는 북쪽에 있고 제습기는 거실 남쪽에 있다. 제습기는 당분간 쓸 일은 없겠지만, 기울기를 달리하면 망가진다고 해서 거실에 뒀다. 이럴 땐 집이 조금 넓길 바라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다. 난 그런 성격이다. 이래도 저래도 크게 예민하게 구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