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만 물드냐?
새벽 4시에 깼다. 태아자세로 잔뜩 웅크려서 잠을 다시 자려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알람은 5시 50분에 울릴 예정, 겨우 나를 재웠다.
나 혼자 기차를 타고 대전에 가는 날이다. 누룽지를 먹고 나섰다. 아직 어두운 6시 50분, 공기가 상쾌하다. 히트텍까지 껴입어서 어깨는 움츠리지 않았고 쌉싸름한 찬 공기보다 상쾌한 공기가 허파로 스몄다.
몇 년 만에 기차를 타다 보니, 잘못 탈까 무서웠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녀들과 만나는 중간 지점, 대전. 그곳엔 나의 오래된 이웃님이 살고 계시는데 그녀들의 이웃이기도 하다. 주말에는 더 바쁘신 분인데, 일부러 우리를 만나러 역에서 기다려 주셨다. 정말 만나게 될 줄이야.
손이 두 개니 망정이지 한 손에 세 개, 총 여섯 개의 종이백을 들고 오셨던 거 같다. 역내 카페에서 처음 만난 두 분과 세 번째 만나는 그녀, 참 희한하다. 매우 편하게 말이 통한다는 게 여전히 미스터리다. 카페에서 한 시간 순삭.
“다음에 대전에 오실 때는 대청호와 천상의 정원으로 같이 가요.”
그리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남자 이웃님이신데, 3년 가까이 랜선으로 알고 지낸 덕분에 기분 좋게 다음을 기약했다.
동갑내기 세 여자에게 날씨는 은혜를 베풀었다. 어제까지 살갗을 할퀴어대던 날씨는 온순했다. 바람은 세지 않았는데 메타 세콰이어는 참지 못하고 잎을 떨어냈다. 습한 눈이 촥촥 내려오는 것처럼 이파리는 급하게 떨어졌다. 활엽수의 활공과는 달랐다.
우리 머리 위에는 그것들이 내렸지만 따갑지 않았다. 메타 세콰이어는 가을에 내리는 눈과 같았다.
“아, 어떡해? 커피만 가져오고 종이컵을 놓고 왔어요.”
“그럼 사과즙 마시고, 여기에 커피 마셔요. 이러다가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질지도 모르니.”
음, 커피맛이 위대해서 사과 향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무 끝을 보려면 목덜미를 한 손으로 받쳐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산은 위대해질 예정이다. 우러러보라.
직선의 미학은 반듯한 ‘자’를 사용하지 않은 자연에서도 있었다. 내 눈은 땅에서 하늘을 향해 수선을 그었다. 이렇게 큰 나무가 조금이라도 각도가 틀어진다면 옆으로 쓰러질 것이다. 반듯하게 자라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서 하늘을 향해 수선을 긋는 나무를 스카이 워크에서 내려보니 더 아찔했다.
으, 자꾸만 엉덩이가 뒤로 빠지려 한다.
오가는 기차 안은 난방이 과했다. 후끈한 온도에 진이 빠졌지만, 오늘의 즐거움을 남겨야 하는 사명감에 글을 써 본다. 이제 자야겠다.
20211113 여행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