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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Nov 14. 2021

무신론자의 12월

산타 할아버지 우리 집에는 오지 마세요

아이들과 시간을 들여서 카페에 왔다.  카페는 섬진강이 보이는 창을 가지고 있다.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라르고쯤 되는 피아노 연주는 멈춰있는 강물 같아서, 바삐 움직이는 초침(충치 취급) 정도는 뽑힌,  시간을 들여서 오길 잘했다.



“크리스마스 글을 써야 하는데, 뭘 쓰지?”


난 혼잣말을 했다. 오랜만에 집에 온 큰딸은 내 혼잣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아니 반절은 흘려 들었다.


“엄마,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넷플릭스 봐야지. 밖에 나가면 개고생이야.”


딱 크리스마스라는 말만 듣고 멋대로 ‘크리스마스에는 뭘 하지.’로 들은 것이다. 그렇다. 내 딸들은 이렇게 커버렸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밖에 나가면 내 돈 주고도 줄 서서 밥을 사 먹어야 하고, 카페는 요란한 연인들로 꽉 찰게 뻔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특별한 날, 특별하게 보내야만 하는 노력이 ‘오징어 게임’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 인파 속으로 휩쓸려가는 걸까.


아이들이 어렸을 땐, 무신론자인 나는 한겨울의 특별한 ‘빨간’ 공휴일을 위해 약간의 돈을 썼다. 산타 할아버지 인양 선물을 포장해서 유치원에 보내주면 유치원에서 산타행사를 했고, 아이들은 그 선물의 출처를 알기까지 몇 년이 지나야 만 했다. 유치원을 졸업하자 선물도 종료되었으니 말이다. 목도리를 선물 받은 다섯 살 막내가 겨울마다 산타 할아버지가 사준 거라며 좋아할 때, 거짓말한 당사자가 되어버린 나는 얼마나 뜨끔했던지. 그리고 초등학생이 된 막내가 “엄마, 이 목도리 사실 엄마가 산 거지?”라고 물을 땐 부정도 인정도 못 하는 어정쩡한 신음을 내야 했다.


특별한 날을 특별하게 보낼 ‘통로’가 없어지자, 난 난감했다. 광고에서는 캐럴과 빨간 산타모자가 모델을 바꿔가며 쉴 새 없이 등장했다. 티브이를 끄는 순간, 산타는 절대 우리 집은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 적막함이 돌았다.


‘안 되겠다. 뭐라도 해야지.’


작은 전구를 달았다. 거실을 오가는 동안 반짝이는 등을 보며 다른 날보다 가족의 심장이 분주하겠지. 하지만 우리 집에는 안전지킴이 ‘정선생’이 살고 있다.


“잘 때는 전구 꺼. 불나니깐.”


나는 안전지킴이 정선생이 잔소리할 , 신체 반응이  있다. ‘진짜 잔소리 .’ 하면서도 말을 들어야만   같아서 아바타처럼 코드를 뽑고 있다.


이런 부모와 사는 아이들은 점점 물들어가더니, 27 안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했노라, 말고 다섯 명이 알록달록한 전구가 되어서 빛을 내는 날이 12월의 특별한 빨간 날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올 해는 빔프로젝터로 영화 한 편 볼 것이다. ‘특별히’ 맛있는 것을 해 먹기보다 바깥 음식을 사다가 집에서 먹으며 지나간 올 해를 떠올리며 깔깔댈 수도 있다. 까만 거실 창 밖에는 하얀 눈이 내리면 좋겠다.

구례 어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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