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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마음’ 동냥

김장철이 다가온다

by 게으른 산책가

힘겹게 3층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딩동, 난 누군지 알아차리고 얼른 뛰어간다. 사실 나는 걸어오는 소리가 들릴 때, 이미 누군지 알아차렸다. 수면바지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래층 할머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전 내내 김장 양념 냄새가 현관문틈 사이로 들어왔다. 내 코는 이럴 때는 굉장하다. 냄새를 맡고 오늘 새 김장 김치를 먹겠구나, 설레발을 치는 중이었다. 역시나 아래층 할머니셨다. 다리는 예전보다 더 안 좋아지셨는지 한 손은 다리에 얹고 계셨다.

“양푼 좀 가지고 나 따라와.”

나는 서둘러 양푼을 찾는데, 사이즈가 좀 크다 싶었다. 두 쪽만 담으면 되는데 너무 커서 맞춰주시면 어쩌지....

내 손에 들린 양푼을 보신 할머니는 역시 뭐라 하신다.


“아이고, 너무 작네. 더 큰 거 챙겨 와.”

“에? 이것도 큰데?”


조금 더 큰 걸 챙겨가는 내 손이 부끄럽다. 할머니 집 앞에는 택배로 부칠 김치 박스가 놓여 있다. 집에는 익히 알고 있는 따님께서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면장으로 퇴임하신 분으로 점잖고 인자한 분이다. 두 분 다 건강하셔서 산책도 잘 다니셨는데 이제는 다리가 불편해서 2층에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그런 몸으로 김장해서 따님 아드님에게 김치를 보내신다.


내 몸이 불편한데도 힘든 김장을 마다하지 않고 보내는 것, 나는 못할 것 같다. 난 딸들에게 그냥 사 먹으라고 하던지 아니면 레시피 보고 내 것도 담아달라고 할 거다.


김치를 담아주시는 손길이 거침없다.

“아 이 정도면 충분해요.”

양푼 안에 채워가는 김치가 가득한데 담는 손길이 멈추질 않는다.


“김장 안 했지? 더 가져가.”

“저 조금이나마 했어요.”


친정이 없는 내가 짠하게 느껴지셨구나. 양푼에서 다이빙할 듯한 김치를 보며 울컥한다. 친정이 없다고 슬프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이런 나를 챙겨주려 한다. 나는 괜찮다고 정리된 감정이, 김장김치에 울보가 될 뻔했다. 이제 보니 나에게 김치를 주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김장 안 했지?


아직 친정을 갖고 있을 나이에 친정이 없다는 건 어른들에겐 짠한 거였다. 동정심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곳에 산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는지도 모른다. 젖동냥은 사라졌지만, 나의 친정 동네에 사는 건 ‘부모 마음’ 동냥을 받으며 사는 것이다.


2020.12.01 작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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