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산책 일기
다시 집으로 돌아가 모자를 꺼냈다. 여덟 시를 조금 넘긴 시간, 물론 해는 떴으나 바람은 아직 새벽 인양 성질머리를 부렸다. 모자로 귀를 꾹 누르니, 바람이랑 맞짱이라도 뜰 듯 당당한 걸음이 됐다.
매일 보는 할머니들은 내게 말한다.
“징글징글하게 걷구마잉? 그려, 걷는 건 좋아.”
대개는 질의응답이 한꺼번에 있어서 난 대답만 하면 됐다.
“네.”
할머니를 보고 나면, 이번엔 수자원공사에서 근무하시는 아는 분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신랑은 왜 안 오고요?”
거리가 있어서 서로 목소리를 키워서 말해야 했다.
“네, 출근했어요.”
“아, 네에.”
손을 힘차게 흔들며 목소리 인사를 대신했다. 나는 동네에서 ‘걷는 사람’이 됐다. 유명 연예인은 걷는 자신을 내세워 책으로도 히트를 쳤지만, 난 소소하게(열댓 명 정도는 알지 않을까?) 알려진 걷는 사람이 된 것이다.
축축한 숲 냄새가 났다. 조금 일찍 나서니 걸음을 멈춰도 시간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늘진 수풀에 눈으로도 충분히 확인되는 물기가 서려있다. 젖은 수풀 냄새, 눈만 감으면 ‘사려니 숲’이 떠오른다. 산책길에 잠시 눈 감고 가고 싶은 그곳을 떠올려라. 그건 공짜니까.
간섭받지 않는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시간을 쓸 수 있을까, 오르막길 중턱에서 쪼그린 채로 작년 김장 일기를 브런치로 옮겼다. 그걸 걷다 말고, 그것도 오르막 중턱에서 하는, 산만한데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 이거 또한 자유란 말이지. 남에게 피해 안 주는 또라이가 되고 싶다면 이곳으로 오세요.
한참을 라디오를 들으며 걷다가 버튼 조작을 잘못해서 라디오가 뚝 끊겼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새소리가 들렸다. 라디오 소리는 묵음인 채로 두고, 악보 없는 새소리를 듣기로 했다. 왜 까치소리가 오랜만인지 의아했다. 시골 사람이고 산책 가인 나는 왜 까치소리를 못 들은 건가. 손님이 오면 까치가 운다고 해서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우리 집이 큰집이니, 내가 좋아하는 작은 고모가 오는 건 아닌지 기대하곤 했는데. 지금이야 까치의 베일(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까마귀만큼 효자도 아닌데 길조가 된 녀석)이 벗겨져서는 예전만큼 좋아하진 않지만, 젊었던 작은 고모를 떠올리게 했으니 됐다.
라디오 소리가 끊기니 쫑긋 올라간 내 귀의 긴장을 풀고 묵음 너머에 있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