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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Dec 13. 2021

울면 안 돼!

울어도 입꼬리만 올리는 건 돼!

4학년 아이들만 돌봄실에 오는 날이었다. 창문을 열었으나, 누구 하나 창문 닫으라고 하는 사람 없다. 바람 없고 햇살 따스한 날,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


"선생님, 운동장에 가요! 네? 운동장에 가자고요~"


난 안 간다고 하지 않았는데, 원하지 않는 답을 들을까 봐 강하게 말한다.

"그래, 가자."

'그래'의 기역자가 시작되었을 때, 아이들은 이미 나갈 준비를 했다. 역시 열한 살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표정과 말의 높낮이로 상대의 기분 파악은 끝나니 말이다.


고작 4학년 아이들은 7명, 3학년도 함께 있어야 재밌게 놀 수 있는데. 세 명은 그네를 타고, 네 명은 나에게 붙었다. 남자아이 둘, 여자 아이 둘.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데 민이가 전에 다른 아이들과 내가 하던 게임을 지켜보고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설명을 시작했다.


 음, 그 놀이로 말할 거 같으면 누구 하나 울다가 끝나는 놀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하던 게임인데 그때는 몸이 여기저기 날아가도 우는 사람 없었다. 금 밟다 죽는 거보다 격렬히 몸싸움하다가 전사하는 게 더 신났다. 그게 옛날 놀이의 기본이었고 재미 아니던가.

"너희 그러면 울면 안 돼. 알았지?"


길게 말하지 않았다. 짧아야 비장한 법! 나의 비장함에 윤이는 울 수도 있는 조건을 달았다.

"아파서 울지는 않겠지만, 다쳐서 어쩔 수 없을 땐 좀 울게요."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네모 안에 사거리를 그린다. 사거리를 지키는 편과 사거리를 통과하여 두 바퀴를 돌아야 이기는 편으로 나뉘어 게임(정확한 룰은 기억이 나지 않아 내가 마음대로 정함)은 진행된다. 남자 대 여자, 의외로 남자아이들이 약체였다. 계속해서 여자 아이들이 이겼다.


멀리서 그네를 타던 덩치가 큰 여자아이가 다가온다.

"저도 할래요."


순간 아이들은 긴장한다.

"그럼 남자아이들이 지고 있으니 그쪽으로 가고 난 여자아이들 팀으로 갈게."

그래서 나까지 합류한다. 여자 아이 중 한 아이가 발끈한다.

"주는 너무 힘이 세잖아요. 선생님은 힘도 없어 보이고..."

사실 나도 주가 무서웠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

주는 역시나 셌다. 아주 셌다. 주가 밀어뜨린 우리  여자 아이가 넘어지고  뒤에 다른 여자아이, 그리고 나까지  번에 도미노처럼 넘어지고 말았다. 남자아이들은 환호하고 우리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일어섰다. 입은 힘센 주에 대해 투덜대는 듯한데 얼굴은 웃고 있다.


아이들은 "한번 더 해요."를 몇 번 했는지 모른다. 더 희한한 건 우리 팀의 공격으로 멀리 날아간 민이는 눈물을 흘리는데 웃고 있다. 울지 말라는 나의 세뇌로 웃고 있는 건지 자신이 날아간 게 웃긴 건지 모르겠다. 다만 아이들은 다음에 또 하자는 말을 하고 다음 수업을 향해 신나게 달려간다.

"아, 재밌다! 그렇지?"

뛰면서 대화하는 말이 들린다. 나도 정말 재밌었다. 또 맑고 따뜻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작년 이맘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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