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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Dec 23. 2021

잠시 고백(Go back)하고 싶어요

받고 싶은 선물

일곱 시에 일어나려고 어제는 일찍 잠들었다. 암막 블라인드 틈새로 비치는 아침 색이 선명하다. 일곱 시가 아니라는 단서가 하나  늘었다. 화장실에서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딸들  하나가 일어났다는 뜻인데, 일찍 일어날 리가 없다. 그녀들은 정오에 일어나니 자연스럽게 간헐적 단식을 하는 중이다. 후다닥 일어나 휴대폰 시간을 확인해 본다.

‘8시 30분’

나는 계획보다 한참 늦잠을 잤고, 그녀들 중 한 명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난 것이다. 퉁퉁 부은 눈두덩이 덕분에 내가 원하는 외겹이 된 눈을 보며 씩 웃는다. 어제 끓여둔 미역국을 데우고, 두부를 꺼내 찌개를 끓인다. 오늘은 막내 생일이다. 막내는 미역국은 싫어하나, 두부찌개를 좋아하니 미역국은 데울 뿐이고, 두부찌개는 멸치 육수를 내는 데 정성을 들인다.

 

일찍 일어난 딸은 막내였다. 단짝 친구가 선물을 주러 온다고 했단다. 부모에게 받은 생일선물은 없지만, 자매와 친구들은 의식처럼 주고받는 중이다. 초인종 소리가 나고, 같은 반 친구인 둘을 매번 볼 때마다 놀라고 있지만, 여전히 놀랍게도 서로를 껴안는다. 누가 봐도 몇 달 만에 본 사이 같다. 매일 통하는 메신저로 궁금할 것이 없을 법한 둘은 여전히 놀라운 수다를 떤다. 수다 사이에는 ‘까르르’ 웃음이 켜켜이 들어있다. 구수한 누룽지 향이 퍼질 때쯤, 나는 물었다.

“하은아, 누룽지 먹을래?”

“음... 뭐.. 네!”

“음... 뭐.. 는 뭐냐? 보나 마나 아침도 안 먹었는데 먹음 되지.”

“음하하하하.”

호탕한 딸 친구의 웃음도 내가 아는 그대로여서 친근하다. 세월이 흘렀다는 건, 그녀들의 대화에 수학 공부가 섞인 것이고 내년 고3 담임은 누가 될까를 추측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의 열여덟 겨울 이 맘 때, 아직 전주 고모네 집이겠구나. 친구들과 전주 시내에 있는 ‘엘브즈’에서 옷을 뒤적이며 구경하고 있다. 친구들은 지금 나이보다 조금 성숙한 옷을 고르지만, 나는 어색하다. 차라리 ‘에드윈’이나 ‘옴파로스’에서 나이에 맞는 캐주얼한 옷을 사고 싶지만, 부모님 돈을 쓰는 게 또한 어색하다. 엄마 손잡고 옷을 사면 좋겠다. 내가 고르면 곁에서 ‘괜찮다, 이거.’라고 해주면 난 그 옷을 고르고 엄마는 계산하겠지. 월급쟁이가 아닌 농사꾼 아빠에게 돈을 받는 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어디에 쓰냐고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도 그렇다. 아빠는 몰랐을 것이다. 쉬는 시간마다 학교 매점으로 뛰어가는 애들 사이에 나는 끼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엄마는 모를 것이다. 고모가 사촌 동생에게 옷을 사줄 때, 나는 부러운 눈길을 주지 않은 척했다는 것을. 그래도 괜찮다. 정말로 괜찮다. 엄마는 서른여덟이었고, 아빠는 마흔여덟이었으니까.

 

겨울방학이 되어 집에 갔다. 불을 때던 육 학년 때는 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는데, 기름보일러로 바꾼 뒤로 방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문틈 사이로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공기는 바람과도 같았다. 그래도 괜찮다. 밤만 되면 아빠는 잘 익은 무김치를 종종 썰어서 양념한 청국장이랑 비벼먹었는데 나도 같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마흔 살, 아빠는 점오 배 더 사셔서 예순여덟 살에 별이 되었다. 내게 누군가 ‘받고 싶은 선물’이 무어냐고 물었다. 나를 잠시만 고백(Go back)하게 해 줘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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