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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Dec 01. 2021

따뜻한 자리

엉덩이를 지지고 왔다

아침에는 부끄럼쟁이처럼 눈이 날렸다. 하필 오늘이 (내가 ) 첫눈이라, 불필요한 시선을 받는 게 불편한지 얼마 전에  단풍잎처럼 날렸다. 멀리 남원 쪽을 바라보니 부끄럼쟁이 눈들은 세로로 켜켜이 더해져서 어두운 흰색이었다. 어두울 수밖에 없다. 구름이 하늘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으니 말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 이건 어린아이들 그림에서나   있지만 당최 말이 안 된다. 아이들은 하늘은 파랗고 눈은 하얗다고 하니 도화지는 어색한 미팅 장소가 되고 만다.


눈이 오는 날의 하늘은 묵직한 잿빛이 맞다. 구름은 말한다, 네게 줄게 있는데 좀 무거워. 하지만 오늘 구름은 변비에 걸렸는지 잿빛에 맞지 않는 같잖은 눈을 떨어냈다.


학교에서 퇴근하면서 아침과 다른 바람이 불어서 비명을 질렀다.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찬물을 끼얹는 장난질을 당한 기분이다. 바람이 기다렸다가 내 정면으로 돌진했다. 소리 지르지 말걸, 의연한 척할걸. 하지만 오후에 부는 바람은 펄럭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흔들고 말 작정을 했다.

귀찮아도 장갑을  꼈고, 롱 패딩 지퍼를 채웠다.  귀찮은 일이다. 결국은 어제,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장갑이  있어서 다행이다.


학습지 마지막 수업하는 시간. 아이의 할머니께서는 전기장판을 ‘온’한 거 말고도 이불도 깔아놓으셨다. 딱 내 자리에 깔아 둔 이불. 이불 아래가 뜨끈뜨끈하다. 성질 더러운 바람 속을 누빈 나를 위해 누군가는 토닥여준다. 곧이어 부엌에서는 전기포트의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이니 커피는 못 마실 테고, 보이차 끓였어요. 추울 텐데, 어서 마셔요.”

“우아, 감사해요. 중국 다녀오셨나 봐요? 십만 원 맞죠?”

“맞아요, 맞아. 겁나게 비싸더라고.”

보이차는 우리 집에도 있다. 코로나 이전에 중국에 놀러 갔던 신랑이 사 온 보이차는 누군가 끓여줘야 먹는 차다. 그리 당기는 맛은 아닌데, 난 다 마시고 왔다. 내 뱃속에 난로를 틀어놓은 거 같았다.

지난 주말에 막내와 만화책을 읽던 자리도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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