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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Nov 24. 2021

벌써 그립다, 시월

롱패딩을 입은 오늘, 가을이 떠났다

2020년 10월 7일

시월에 접어들면서 걷기 좋은 때는 7시로 늦춰졌다. 전장에 나서는 장군이 갑옷을 입듯, 나는  공기에 움츠리지 않기 위해서 옷을 껴입었다. 바깥공기에 감각세포들은 얼굴 살갗으로 우르르 모여든다. 공기는 어제보다 차지 않고, 바람은 여리게 불어댄다. 가벼운  끝을 들고 있다면 느슨한 에스자를 그리며 날릴만한 기분 좋은 바람이다. 산책에서 날씨만큼 중요한  있으랴.


 

'흙을 밟는 길'로 향한다. 그 길에는 약수터가 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약수터 근처에서 살았다. 집에서 약수터까지는 30미터도 안 되는 거리이다. 여름날 언덕에서 놀다가도 목마르면 집으로 갈 필요가 없었다. 두 손에 사탕을 받듯 공손히 모아서 물을 담아 마신다. 그러면 입에서 터지는 소리가 있다.

“카아.”

멈추지 않고 잔잔히 흐르는 물이라 항상 시원했다. 그리고 다시 논으로 들로 달려간다. 언니, 오빠들을 분주히 따라다니다가 돌팍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울면서 나를 봐달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소용없다. 얼른 흙을 털어내고 달려갈 수밖에.


 

땀 비린내 가득하던 여름이 지나면, 약수터 근처 논에는 메뚜기가 출현한다. 나는 집으로 달려가 콜라병을 가져왔다. 입구가 좁은 콜라병에 메뚜기를 넣고 엄지는 뚜껑 역할을 한다. 메뚜기의 움직임에 정신이 팔린 어린 사냥꾼은 풀숲이 깊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뱀이 많던 시절인데, 한 번도 뱀에 물리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다. 농약을 하지 않던 예전의 시골은 메뚜기의 천국이었다.  삵처럼 아주 조용하게 발걸음을 떼어내며 눈은 깜빡거리지 않고 메뚜기의 동태만 살핀다. 어린 손은 민첩하게 메뚜기를 낚아채 콜라병에 밀어 넣는다. 새끼를 업고 있는 메뚜기를 본다면 신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내려둔다. 작은 손안에 두 마리가 꿈틀댄다. 놓치지 않으려는 예닐곱 살의 어린 나, 지금은 어쩌다 집안에 들어온 개구리는 바가지로 덮어놓기만 하는가? 난 멀어진 유년기만큼 그것들과 멀어졌다.


 

약수터에는 끈이 묶인 파란 바가지가 있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대충 휘젓는다. 그리고 다시 물을 담아 마신다. 나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약수가 느껴진다. 식도야, 좋은 아침! 약수의 온도로 나의 영혼까지 씻어내는 듯하다.


신발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는데 더 빨라진다. 개울 건너편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강아지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한다. 오늘도 나 왔어. 언제부턴가 강아지는 맹렬한 짖음을 멈추었다. 이 마을의 고요를 깨는 건 강아지만이 아니었다.


까만 정장을 입은 덩치 큰 아저씨들을 닮은 까마귀가 전선에 앉아있다. 그들끼리 무슨 대화를 하는 건지, 까악 거림을 주고받는다.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본다. 백 퍼센트 검은색이다. 덩치가 작은 편이 아닌데, 앉은 자세는 흔들림이 없다. 까마귀들은 떼를 지어 다닌다. 자신들의 무리가 힘을 모으면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걸 영원히 깨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바람이 분다. 나무의 잎을 낙엽으로 만들지는 못하는 바람이다. 잎은 바람에 흔들려 마른 소리를 낸다. 초록잎은 옅은 바람에도 반짝이며 무수히 흔들리더니, 이제는 붉은 잎이 되어 뻣뻣한 소리로 변했다. 굳이 나와 비슷하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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