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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Nov 21. 2021

복권

버릴 때는 화풀이용으로 바짝 구겨버리는 그것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에픽테토스


사두고 다 읽지 못한 책을 후두둑 넘겨보다가 이 문장에 꽂혔다, 아니 찔렸다. 여전히 일어나는 일에 8할을 주고 있으니.


또 일어나는 일을 적어보려 한다.


점심에 라면을 먹다가 복권 이야기를 했다. 신랑은 한 젓가락 후루룩 먹고는 바로 복권을 꺼내어 맞춰봤다. 만원을 주고 산 복권은 다시 기회를 주었다. 5천 원 당첨! 나도 얼른 일어나 내 복권을 가져왔다. 쓰레기가 된 내 복권. 내게 복을 주지 못한 쓰뤠기!


이 복권은 사연이 있다. 엊그제 말고 지난주 금요일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 수업이 캔슬됐다. 모두 같은 학교 아이들이었고 수학여행이 있었다. 다들 쉰다는 개별 통보를 받았고, 난 시간이 엄청 남아돌았다. 그래서 로컬푸드에 들러 장을 봤다. 차에 올라탄 순간, 퇴비 냄새가 났다. 남원 시내에서는 이런 냄새가 날 리 없는데, 무슨 냄새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 발에 코를 가까이 댔다. 세상에 내가 개똥을 밟은 것이다. 갓 싼 똥인지 찰싹 붙어서는 풀숲에 비벼대도 떨어지질 않았다. 오후에 비도 내렸던 차라 고인 물을 찾아 헤맸다.


겨우 찾은 고인 물에 신발 뒷굽을 불렸다. 운동화 사이사이에 끼인 것들을 떼어내는 데는 화단에 있는 가지를 썼다. 속이 뒤집히는 거 같았다. 더 큰 문제는 벌집 차 매트였다. 한 칸에 제대로 끼인 그것. 어쩔 수 없이 휴지로 덮었다. 그렇게 며칠을 다닌 나도 대단하다. (월요일에 신랑이 세차해줬다.)


개똥 밟은 나의 하소연을 듣고 신랑은 복권을 사라고 했다. 개똥은 내게 행운의 기회로 다가왔다. ‘그래, 이건 내게 기회야.’ 그런데 지갑 안에는  원짜리와 동전을  털어내니 4  밖에 없었다. 그것도 기회가 되려면 .


저번  토요일에 복권을 확인해보니 만원이나 됐다. 그걸 모조리 복권에 투자했건만 쓰뤠기라니.


여기에서  ‘생각 적는다면, 아니 깨달은  있다면, 4 을 투자해서 만원이 되었을  5 원은 현금으로 받고 5 원만 투자하자. 쓰뤠기가 되더라도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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