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가시처럼 들러붙은 것들
머릿속을 차지한 것을 떼어내려 했다. 덥다 싶을 정도로 집안을 데웠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푹 잠드는 게 상책이다.
기숙사에 있는 둘째가 열이 난다고 했다. 일요일이라 갖고 있던 해열 진통제를 먹었다고 했으나, 내가 직접 돌보지 않으면 걱정은 필요 이상으로 덕지덕지 들러붙는다. 아마 곁에 있었다 해도 해줄 수 있는 건 상비약 먹이는 것뿐일 텐데. 시험 공부하는 딸에게 자꾸만 전화를 걸어서 상태를 물었고, 휴대폰에 ‘발열’을 검색하는데 오랜 시간을 썼다. 아침에 일어나 딸에게 전화를 건다.
“서현아, 열은 떨어졌어.”
“응, 괜찮아.”
“두통은?”
“잠이 올 뿐이야.”
머리에 들러붙어있던 도둑가시 같은 걱정은 일제히 떨어져 나갔다. 이제야 가볍게 산책을 나설 수 있었다.
어제까지 겹겹이 껴입던 옷은 가볍게 입었다. 그래도 모자는 귀까지 푹 눌러준다. 귀에서 냉기를 느끼면 내 오감은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머리가 띵해.’, 라고 느끼는 순간 통(痛)은 관자놀이까지 올라가서는 오늘의 자연 ‘뷔페’를 즐길지 못 할게 뻔하다. 머리와 가슴이 냉기에 마취되지 않도록 겨울에 모자를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바느질 할 때를 떠올리면 알 수 있다. 프랑스 자수를 처음으로 배울 때 검지에 낀 골무가 없다면, 자수를 놓으며 몰입하는데 기능적인 결함을 느끼고 만다. 무아지경과 무념무상을 얻고 싶어서 자수를 하는데 검지의 통증을 느끼는 순간, 고개가 뻐근한 것도 덩달아 깨닫게 될 것이고, 허리도 삐딱해진 걸 알고서 외칠 것이다. 에잇, 골병들겠다, 때려치워.
삶을 즐기는데, 통(痛)은 쾌락을 통(通)하게 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모자를 쓴 이유가 절절했다. 도둑가시 같은 걱정이 떨어졌겠다, 모자도 단단히 썼겠다, 산책 후 커피를 사줄 물주도 대동하겠다, 여러모로 오늘 산책은 경쾌할 예정이다. 물주인 신랑이 산책길에서 낯부끄러운 장난을 치니 약이 올랐지만, 난 나름의 부끄러운 방법 피하는 걸 찾아냈다. 이건 꿩이 자신의 몸을 숨기는 방법(자신의 머리만 어딘가에 숨기는 방법)과 유사하다. 우리 부부의 유치한 장난을 누군가 봤다는 전제하에 내 안경에 김을 잔뜩 불어넣었다. 검은 안경을 쓴 효과와도 같다. 내게 보이는 세상이 뿌연 하듯 저들도 나를 못 알아볼 거야. 꿩의 마음을 이해하고 말았다.
오르막을 지나서 내리막길, 역시 오르막길은 자가발전을 하는 데 도움이 되어서 모자를 벗어도 됐다. 가는 머리카락은 바람을 따라 들썩인다, 시원하게. 도치법을 쓰고 싶은 내 마음은 춥지 않고 시원해서 입 꼬리가 올라가는데 딱히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다. 파트라슈를 닮은 동네 개에게도 말을 건넨다. 그들은 그들 식으로 답한다. 성대도 몸집처럼 좋은 지, 나는 움찔한다.
“왕, 우왕, 왕!왕!왕!왕!”
다른 개들까지 따라 짖는다.
“왈, 왈!왈!왈!”
“멍, 멍!멍!멍!”
‘우쒸, 괜히 인사했어.’
덩치에 따라 개 짖는 소리는 달라졌다. 조용한 동네에는 개들만 사는 것도 아닌데 릴레이로 짖어대는 개소리가 가득하다.
왕왕왕, 왈왈왈, 멍멍멍 그래 짖어라, 짖어. 우리 둘째는 열이 떨어졌단다. 어떤 소음이라도 달게 들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