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며 울기도 했다
자다가 깬 밤은 무섭다. 다시 눈을 붙여 봐도 소용없다. 겨우 밤 11시 반인데, 잘 만큼 잔 사람처럼 정신이 또렷하다. 한두 시간 잠만으로도 온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당장 일어났을 것이다. 싹둑 잘린 종잇조각을 이어 붙이듯, 겨우겨우 잠을 이어갔다. 몇 번 깨기는 했으나, 이삭 줍는 여인처럼 조각난 잠을 그럭저럭 주웠다.
전날 산책도 했고, 커피는 마시지 않았는데 왜 불면증이 왔을까. 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앙금 두 덩이 때문이다.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밀도 높은 앙금일 거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내 손으로 더 단단하게 뭉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금을 더 넣으면 가슴속 앙금이 떠오를 수 있을까? 그래서 내 마음에 소금을 들이부었다. 소금 농도에 못 견뎌 앙금이 떠오를 때, 얼른 건져서 던져버려야지. 짠 내 나는 소금을 들이붓고 나면 홀가분해질 거야. 하지만 앙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은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사해’가 되어갔다.
앙금의 실체를 마인드맵으로 그려보면 가장 가까이에 신랑이 있다. 원인 제공자는 아닌, 예를 들어 ‘악마’의 마인드맵을 그릴 때 반대말인 ‘천사’를 쓸 수도 있지 않나, 배설구로는 제일 적격자였다. 돌덩이를 들어 올리기 위해 사용한 소금은 미네랄은 전혀 없는 정제된 소금이었다. 쓴 맛 나는 소금은 ‘험담’이었다. 상처 준 이들을 향한 험담을 하면 할수록 앙금은 단단해지고 커져갔다.
‘당신들은 왜 내 인생을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거야. 난 절대 물러서지 않겠어.’
배설물 같은 내 험담을 다 들어주던 신랑은 어제서야 백기를 들었다. 나에 대한 실망인지, 괜히 엮이기 싫어 거리를 두는 것인지 나를 향한 애정 표현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좀 떨어져서 자라고 할 정도로 딱 붙어 자던 그는 내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고, 아침의 이유 없는 뽀뽀세례도 없어서 아침마다 하던 “아후, 귀찮게 하지 마.”라는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귀찮았는데, 귀찮던 일이 사라지니 나를 둘러싼 보호막도 사라진 거 같다. 그제야 내가 뿌려댄 정제된 소금이 떠올랐다.
바람을 좀 맞아야겠다. 산책을 나서기 전에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는 사이, 카톡이 왔다. 블로그 이웃님이 보내준 노래 선물이었다. 어쩜 내 기분을 알아주는 듯, ‘슬픔이 없는 시간 속으로’라는 노래였다. 나는 잔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을 보내드렸다. 걸으면서 잔나비의 다른 노래도 들었다. 대학가 축제에서 환호를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최정훈을 보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수많은 사람에게 받는 환호의 주인공은 잔나비인데,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해서 함성이 내게 쏟아지는 별빛 같았다. 함성에 노랫소리가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소름 돋는 까닭을 알았다.
사랑이다. 난 사랑받지 못하면 앙꼬 없는 빵이었다. 연예인들이 인기를 잃어갈 때, 어떤 기분인지 알 거 같았다. 난 다행히 연예인도 아니고, 적어도 한 사람은 보증 수표처럼 아껴줄 거라 생각했다. 만약 이 전제가 뒤집어진다면 나는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그런 사람에게 배설물을 받아내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어졌다. 대학 축제에서 환호를 받으며 열창하는 잔나비를 보면 볼수록 눈물이 났다, 미안했다.
단지 내 이름만 예쁘게 불러주고, 내 볼만 쓰다듬어 주고, 새벽에는 내 어깨에만 이불을 덮어주며, 매일 아침 귀찮게 구는 일을 당하는 게 나이길 원한다는 것도 깊이 깨달았다. 하필 지금 그는 야간 근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