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가 있는 동네 카페
어렸을 때부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좋았다.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선생님이 물으면, 내가 사는 곳에 있는 농협에 다니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내가 사는 동네를 말할 때, 붙는 수식어가 있다.
‘토끼랑 발맞춰 사는 동네.’
면소재지에 살았지만, 버스가 다니는 길은 울퉁불퉁했다. 버스를 탈 때 내손엔 검정 비닐봉지를 챙겨야 했다. 그렇다고 도시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멀미도 포함되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가방을 내던지고 냇가에 가던지 산에 가던지 논두렁으로 갔다. 은어는 잡지도 못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뱀은 그토록 싫어하면서 (이 당시 악몽은 북한군이 나오는 것과 우글대는 뱀이 나오는 것이었다) 산에 올라서 열심히 전쟁놀이를 했다.
지금도 도시로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변함없다. 특히 우리 동네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옆동네 윗동네보다 우리 동네가 제일 좋다.
산책을 나서기 전엔, 우리 동네 예찬은 떠오르지 않았다. 서리가 하얗게 내려서 발을 떼는데만 집중했다. 9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인데, 가공의 무장공비를 잡던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는 워낙 높아서 해는 아직도 산에 살짝 걸쳐있을 뿐이다.
더 이상 나무에는 잎이 달려있지 않았다. 어머나, 아니 얼렐레, 한 장이 달려있다. 딱 한 장.
바닥은 매끈해서 청소를 잘해둔 거실을 걷는 기분이었다. 뭐든 좋다는 이야기. 낙엽을 밟던지 깨끗한 길을 매끈하게 걷던지 다 좋다. 해가 떠오를 때쯤, 걸음을 크게 떼어 걸었다. 허리가 시원했다. 추웠던 저번 주는 산책을 나서지 않았는데, 변화는 곧장 나타나서 두려웠다. 허리가 아팠으며, 밤에 잠이 쏟아지지 않았고, 3층인 우리 집을 걷는 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걷는 40분은 보약이었다.
우리 동네는 6~7년 된 카페가 있다. 시골에서 카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바와 달리 매출은 계속 늘고 있다. 사과 쿠키를 세 개 샀다. 하나는 내가 커피랑 먹을 거, 하나는 막내 과외 선생님에게 대접할 거, 마지막 하나는 애들이 먹을지도 몰라서 샀다. 부드러운 식감이 좋은 우리 동네 쿠키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가 사는 곳의 애정도는 쑤욱 올라갔다. 산책하고서 쿠키를 사서 돌아가는 시골길이라니. 카페에서 우리 집까지는 5분 거리인데, 5분 동안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서리 맞은 양파 잎은 어느새 촉촉해졌다. 그리고 우리 집 올라가기 전 장미꽃은 아직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