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쉼표 Oct 25. 2021

아빠, 변기가 예술이야.





아이는 지난 주말 독해력 문제집을 풀다가 헐레벌떡 내게 달려왔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는 정말 너무 놀란 모습이었다. 그러곤 내게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 변기가 예술인 줄은 몰랐어!!!


아이의 뒷말을 기다리던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아, 뒤샹의 변기 이야기구나. 작품 제목이 샘이었던가. ​​나는 아이의 말을 받아 이어갔다.


, 그치! 근데 모든 변기가  그렇다는  아니고  사람이 변기를 전시관에  놓으면서 모든 것이 예술이   있다고 보여준 거야. 우리집에 있는 변기는 그냥 변기이지만 그걸 어디에 두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거 아닐까?


​​

오!! 진짜 신기해!! 변기가 예술이라니!!


​​​


아이는 내 말을, 문제집에 발췌문으로 실린 그 글을   이해했을까. 아무튼 아이는 오랜만에 그럴 듯한 걸 알게 되어 꽤 만족스러운 모양새다. 곧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


엄마!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니, 너무 멋지다!


​​​

얼추 내 말을 이해했구나. 나는 몇 마디를 더 이어 붙여볼까 하며 입을 열었다. 응, 맞아. 물론 그렇게 되려면 중간에 많은 게 필요하지ㅁ...


그러나 아이는 ​​내가 뒷말을 고르는 동안 이미 동생과 우아악 하며 놀이를 시작했다. 나는 남은 말 찾기를 멈추고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재빠른 전환들. 그저 즐거우면 됐지 하고 이번엔 밖으로 피식, 웃었다.



며칠 뒤 아이는 아빠에게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아빠, 변기가 예술이야.




​많은 것이 생략된 아이의 말에 아빠는 물음표를 가득 띄웠고 나는 또 피식 웃었다. 그리고 또 아이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빠른 전환. 너의 속도. 너의 감각. 조금은 생경한 그것들.




뭐 어떠니. 그저 즐거우면 된 거지.

괜찮다. 내 아들.






매거진의 이전글 다섯 살의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