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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Aug 14. 2021

다섯 살의 집



 집에   4년쯤 되었다. 신혼집에서  건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면서 아이의 침대를 샀다. 아이는 자기 침대가 생긴다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갔다가 하원하며 길 건너 새로운 집으로 왔다. 아침에 우리는 저 아파트로 갈 거라고, 나중에 오면 새로운 집으로 갈 거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은 아니었다. 이사가 결정되고 몇 달에 걸쳐 종종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원하는 아이의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집에 와서 침대를 보고 방방 뛸 줄 알았는데 슬깃 쳐다보고는 말았다. 온 집안은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널려 있었다. 아이는 어느 곳에도 편히 있지 못했다. 익숙했던 가구는 대부분 사라졌고 침대와 식탁 말고는 가구도 다 들어오기 전이었다. 우리는 조금 짙은 마룻바닥에 앉았다.



아이는 곧 열이 났다. 비상약을 먹었고 곧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다. 너른 집으로 이사해서 즐거운 나와 달리 아이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동생은 뛰어다니는데 아이는 그냥 그랬다. 열이 나는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러다 앉은 자리에서 먹던 것을 다 토해냈다. 정리를 하고 해열 패치를 붙여 침대에 뉘었다. 갑자기 아이는 우리 집에 가고 싶다고 엉엉 울었다.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라고 하자 아니라고 했다. 저기 동부아파트에 가고 싶다고 아이는 막 울었다.



열이 가라앉은 다음 날 아이는 화장실 변기를 싫어했다. 이유는 새로 바뀐 비데 소리가 싫다는 것이다. 엉덩이를 붙이면 나는 띡띡, 작동 소리가 아이에게 거슬렸나 보다. 아이는 변기에 앉아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볼일을 보지 못했다.



놀이방으로 꾸밀 가장 큰 방에 장난감을 밀어 넣어놨는데 아이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아이는 우리 집에 가자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당시 우리는 아이가 얼마나 예민한가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 해 전만 해도 그 예민함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니 늘 우리의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라는 공간이 달라졌을 때 아이가 겪을 갈등과 불안은 또 그만큼 짐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얼마나 예민한지 알면서 "집"이라는 공간과 아이를 충분히 연결 짓지 못했다.



아마 그래서 종종 생각이 나는 것 같다. 그때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큰 걸 알면서도 고작 다섯 살 난 아이에게 뭐 얼마나 중할까 가벼이 여긴 그때의 내가 밉다.



이런 이유로 난 슈퍼밴드2 김예지팀의 이 노래가 너무 슬펐고 눈물이 났다. 어느 순간 나로부터 아이를 도려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나와 너는 철저히 분리된 관계라고 일부러 주문을 외웠는데 어느새 아이는 내 살갗이 되고 마음이 되고 심장이 되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https://youtu.be/rE5T-I3kU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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