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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Aug 12. 2021

약속을 배우는 너에게






네가 지금 배우는 것은 약속이야.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보고 이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약속을 배우는 거지. 국어도, 수학도, 그리고 악보를 보는 것도 모두 약속이야.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건 그다음에 할 수 있어.



이승윤이 기타를 세워서 쳤지? 네 눈엔 그게 참 멋있고. 하지만 이승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처음에는 너처럼 바른 자세로 코드 연습을 하고 악보를 보면서 매일 연주를 했을 거야. 박다울이 거문고 줄을 끊었지? 그게 왜 멋있을까? 이미 충분히 멋진 연주를 했기 때문이야. 만약에 그런 것 없이 줄만 끊으면 사람들이 멋있다고 했을까? 슈퍼밴드에 나오는 기타리스트들 중에는 자기만의 튜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그래서 너도 기타 줄 튜닝을 마구잡이로 돌렸지? 어땠어? 줄이 너무 헐거워져서 소리도 잘 안 났어. 박다울이든 슈퍼밴드의 누구든 모두 너의 지금처럼, 배우고 익히고 연습하며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했어. 자유롭게 무언가 하고 싶다면 그건 그다음 일일 거야. 약속을 잘 배우면 네가 더 할 수 있는 게 많아. 엄마 생각은 그래.



네가 피아노 콩쿨 곡을 열심히 준비했고 곡을 외웠고 작은 대회에서 상을 받았어. 그리고 이따금씩 네가 외운 그 곡을 다른 코드에서 시작해서 변주했지. 선생님도 엄마도 깜짝 놀랐어. 그런 변주가 가능했던 이유는 뭘까? 네가 처음 그 악보의 약속을 잘 지켰기 때문 아닐까? 콩쿨 곡을 외우지 않았다면, 그 악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다음 변주가 가능했을까?



바다에서 잡아온 소라게는 집에서 살 수 없어. 그 게는 바다에서 사는 아이야. 그게 지구의 약속이야. 어떤 동식물들은 자기가 살 곳이 분명히 정해져 있어. 내가 키우고 싶다고 그 약속을 깨고 거스르면 네가 사랑하는 소라게는 결국 죽어. 어떻게 해서 산다고 해도 그건 소라게에게 불행한 일일 수도 있어. 지구가 만들어놓은 약속을 우리가 마음대로 망칠 수는 없어. 너가 울면서 소라게를 보내줬지? 그동안 수수와 깡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는데 많이 슬펐지.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



제주, 전이수 갤러리



이수 형아 전시에서도 봤잖아. 자유라는  정말 그냥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봤지. 혼자 산다면야  어떻게 하든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니까. 너는  연주를,  그림을 누군가 봐주길 원하고 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고 싶어 하잖아. 영어 선생님의 칭찬을 자랑하잖아. 수수와 깡이가 죽지 않았으하잖아. 그게 바로  증거야.



배울 게 너무 많지. 이 세상에 약속이 너무 많아. 그걸 차근차근 배우는 게 지금 네가 할 일인 것 같아. 끝이 안보이지. 호기심도 많고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네게 이 세계는 언제나 너를 방해하는 것 같을 거야. 하지만 이 지겨운 시간을 좀 더 견뎌보자. 조금만 더 지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져.



그때가 되면 기타를 세워서도 잘 칠 수 있고 파레트에 네가 원하는 색을 하루 종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게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을 거야. 그보다 먼저 스스로를 더 기쁘게 할 거야.



우리 약속을 잘 배우고 잘 지켜보자. 지금 당장은 힘들고 고단하겠지만 네가 더 단단해질 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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