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내 일에 대해선 물러남이 없었던 것 같다. 뭘 하든 실패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았고 그냥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감사하게도 매순간들마다 큰 좌절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나 혼자 잘나서 가능한 게 아니었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다. 내가 어디로 돌아 나가도, 늘 나를 지켜주고 믿어주었다.
이런 삶에 익숙했던 나는, 엄마가 되면서 스스로 나를 무너뜨려야 했다. 요즘 치고는 이르게 엄마가 된 편이라 그 과정은 더 고됐다.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것 없이 힘들고 괴롭고 지쳤다. '나'라는 한 개인이 영글기도 전에, 내 품에 떠맡겨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덜 자란 나와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는 매일 싸웠다. 엄마면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일 스스로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된다는 위로는 모두 튕겨냈다.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매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시간을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면 우리는 모두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건강한 어른이 아닌 것처럼, 어떤 시간을 약속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겠다.
예민하고 어여쁜 내 아이의 여러 날들을 생각하며 고민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와 나를 번갈아가며 들춰냈다. 문제 해결에 익숙한 내게 늘 어려운 숙제 같았다. 학년이 올라가며 겪는 갈등들은 나의 어떤 선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감정적인 나를 모두가 붙들었다. 거기까지라고 밑줄을 그어주었다.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더더욱 부풀어 올랐고 괜찮은 듯 아닌 듯 그런 마음으로 외줄 타기를 한다.
자라느라 고된 아이의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만큼 아이도 매순간이 힘들 것이다.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어쩔 수 없이 홀로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가 더 괴로울 것이다. 회복. 치유. 안정. 이런 흔해 빠진 표현에 허우적거렸다.
도망가자. 그것밖에 없어.
어떤 굳건함으로 계속 맞서고 그 과정에서 힘을 길러내는 게 누군가에겐 가능할지 모르지만 일단 적어도 우리에게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그렇다. 아이의 회복에 대해 시작한 생각이 또다시 나에게로 닿는다. 모두에게 멈춤은 필요하다는 흔해빠진 문장에 자주 마음이 동하는 걸 보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내 방학과 아이 방학을 활용해 일단 떠나기로 했다. 여행 같은 일상을 살아낼 수 있도록, 강릉에서 두 달 단기임대계약을 했다. 이 시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나는 이 시공간을 천천히 글로 옮길 생각이다. 글로 기록해야만 비로소 그 시간이 온전히 남겨진다는 내 믿음 때문이다. 어떤 구체적인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영 기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리 대단한 도망은 아니지만,
우리는 일단 도망을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