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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Jul 17. 2022

대단한 도망은 아니지만, 일단 도망가자.




나는 사실 내 일에 대해선 물러남이 없었던 것 같다. 뭘 하든 실패에 대한 염려는 하지 않았고 그냥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감사하게도 매순간들마다 큰 좌절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나 혼자 잘나서 가능한 게 아니었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다. 내가 어디로 돌아 나가도, 늘 나를 지켜주고 믿어주었다.


이런 삶에 익숙했던 나는, 엄마가 되면서 스스로 나를 무너뜨려야 했다. 요즘 치고는 이르게 엄마가  편이라  과정은  고됐다.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없이 힘들고 괴롭고 지쳤다. ''라는  개인이 영글기도 전에,  품에 떠맡겨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자란 나와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매일 싸웠다. 엄마면 응당 그러해야 한다는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일 스스로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된다는 위로는 모두 튕겨냈다.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런 거구나 매일 뼈저리게 느꼈다.


그런 시간을 지나고 지나고  지나면 우리는 모두 건강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 건강한 어른이 아닌 것처럼, 어떤 시간을 약속하기는  어려운 문제겠다.


예민하고 어여쁜 내 아이의 여러 날들을 생각하며 고민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와 나를 번갈아가며 들춰냈다. 문제 해결에 익숙한 내게 늘 어려운 숙제 같았다. 학년이 올라가며 겪는 갈등들은 나의 어떤 선을 넘어서는 것 같았다. 감정적인 나를 모두가 붙들었다. 거기까지라고 밑줄을 그어주었다.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더더욱 부풀어 올랐고 괜찮은 듯 아닌 듯 그런 마음으로 외줄 타기를 한다.


자라느라 고된 아이의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만큼 아이도 매순간이 힘들 것이다. 아니지. 정확하게 말하면 어쩔 수 없이 홀로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가 더 괴로울 것이다. 회복. 치유. 안정. 이런 흔해 빠진 표현에 허우적거렸다.



도망가자. 그것밖에 없어.



어떤 굳건함으로 계속 맞서고  과정에서 힘을 길러내는  누군가에겐 가능할지 모르지만 일단 적어도 우리에게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그렇다. 아이의 회복에 대해 시작한 생각이 또다시 나에게로 닿는다. 모두에게 멈춤은 필요하다는 흔해빠진 문장에 자주 마음이 동하는  보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방학과 아이 방학을 활용해 일단 떠나기로 했다. 여행 같은 일상을 살아낼  있도록, 강릉에  단기임대계약을 했다.  시공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나는 이 시공간을 천천히 글로 옮길 생각이다. 글로 기록해야만 비로소  시간이 온전히 남겨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어떤 구체적인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영 기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리 대단한 도망은 아니지만,

우리는 일단 도망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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