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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Dec 02. 2022

아이를 조금 덜 사랑하세요.

이청준의 <연>과 함께




어디서 본 말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육아에 관한 게시물에 누군가가 지나가며 달았던 댓글에서 본 것 같다. 자식을 조금 덜 사랑하면 된다는 것. 절대적인 사랑의 양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다. 자식을 향한 마음을 조금 덜어내면 자연스레 거리감도 생기고 애닳는 마음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내 몫이 아니다. 아이를 둘러싼 바람의 결은 언제나 바뀐다. 그 안에서 생동하는 아이를 내가 언제까지고 붙들고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어렵다. 특히 무엇이든 곧바로 해결해야 하는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아이를 그만 주시해야 한다. 그 이후에 불어닥칠 후폭풍을 예상하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큰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야 한다. 아이의 바름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내 예상대로 크지 않는 아이와 거리를 조절해야 한다. 아 어렵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글이 있다. 이청준의 연. 중1 교과서 수록 소설을 읽다가 만난 작품이다. 중학생에게는 도저히 보이지 않을 메시지가 또다시 나를 뚫고 들어왔다. 바로 다음 부분이다. 나눠 읽고 싶다.






  봄이 되어 제 또래 아이들이 모두 마을을 떠나 읍내 상급 학교로 가 버린 다음에도 아들놈은 혼자서 그 파란 봄 보리밭 위로 하루같이 연만 띄워 올리고 있었다. 아침나절에 띄워 올린 연이 해 질 녘까지 마을의 하늘을 맴돌았다.

  어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그 아들의 연을 볼 수 있었다.

  연을 보면 아들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고, 아들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연은 언제나 머나먼 하늘 여행을 꿈꾸고 있는 작은 새처럼 보였고, 그래서 언젠가는 실줄을 끊고 마을의 하늘을 날아가버릴 것처럼 어머니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연이 그렇게 하늘에 떠올라 있는 동안엔 어머니도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연이 하늘을 나는 동안은 어느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 마을의 회관 뜰 한구석에, 또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어느 보리밭 이랑 끝에 그 봄 하늘처럼 적막스럽고 외로운 아들의 모습이 선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놈의 연날리기를 원망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녀석의 마음이 고이 머물고 있은 연의 위로를 감사할 뿐이었다.

  연에 실린 아들의 마음이 하늘에 내려오는 저녁 연처럼 조용히 다시 마을로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결국 이변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중략)

  연이 있어야 할 곳에 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연이 어느새 실이 끊어져 날아간 것이었다. 빗살처럼 곧게 하늘로 뻗어 오르던 연실이 머리 위를 구불구불 힘없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중략)

  어머니는 아예 밭 언덕에 주저앉아 연의 흔적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하염없는 눈길을 하늘에 못 박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고 난 다음에야 어머니는 비로소 가는 한숨을 삼키면서 천천히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 반나마 차오른 무릇 바구니를 옆에 끼고 마을길을 돌아가고 있는 어머니는 방금 전에 무슨 아쉬운 배웅이라도 끝내고 돌아선 사람처럼 거동이 무척 차분했다. 연을 지킬 때처럼 초조한 눈빛도 없었고, 발길을 조급히 서둘러 가려는 기색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미리 체념해버린 것 같은 거동이었다. (중략)

  어머니는 다만 그 무심한 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가는 한숨을 삼키며 허망스럽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가, 어딜 가거나 몸이나 성하거라......”


- 이청준, <연>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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