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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Apr 03. 2024

내 아이의 기타, 왜여 뭐여!




취미로는 되는데 전공이나 직업으로는 좀 그렇다는 그거슨 내 아이의 기타. 앞문장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다. 전공선언을 하지 않았고 변화무쌍한 12살에 불과한데, 기타를 잡았던 날부터 들어온 숱한 염려들이다. 아이도 이제 저 말에 피식 웃거나 본인이 먼저 기타로 돈 벌 수 있어요, 하는 지경에 이르렀나니 얼마나 많이 그런 말들에 노출되었는지 말할 필요도 없다. 기타로 먹고살 걱정을 대신들 해주니 참 감사한데, 그 고루한 생각을 아무 필터링 없이 창창한 아이에게 뱉어내는 그 마음들이 나는 진심으로 신기하다.


부모라면 내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글 쓰는 게 좋아 예고 문창과에 갔다가 사범대에 가고 22년 내내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석박사를 밟고 대학에서 일하는 일련의 과정 한가운데에는 글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전문적인 작가가 아니고 글쟁이도 아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글을 곁에 두고 산다. 그래서 행복한가. 응. 행복하다. 내가 하던 전공대로 밀어붙여 시인이 되었든 교사가 되었든 나는 어쨌든 글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최근에 내가 쓴 에세이를 독립출판물로 묶어서 내려다가 인쇄 직전에 멈췄다. 우리의 이야기 혹은 내 아이의 이야기가 책으로 박제되는 것이 두려웠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훅 일었기 때문이다. 책을 내지 못한 이유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던 게 전부다. 나는 여전히 글을 좋아하고 책을 꿈꾼다.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글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근데 말야. 내가 예고 문창과를 간다고 했을 때 오늘날의 이런 나를 누가 상상했겠냐고. 단순히 글이 좋아서 시작한 일의 끝이, 과정이 이럴 것이라는 것은 정말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그러니까 제발. 남의 삶을 예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들 예측이 돼서 그렇게 사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묻기도 귀찮다. 숨기려고 해도 보이는 그 말들, 마음의 기저를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누가 잘 사나 보자 내기라도 할 참인가. 잘 사는 게 뭔데요?


최근에 아이는 엄마 아빠가 훌륭한 일을 하는데 너도 기타 말고 더 훌륭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까지 듣고 왔다. 오.. 좀 셌다. 그치만 차라리 이런 말이 나을 때가 있다. 인정하는 척 칭찬하는 척하며 감춰둔 그 야릇한 감정들. 제발 들키지 말아 줘. 이승윤이 색안경을 끼고 그게 색안경인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러니까. 딱 그거다.


물론 나도 불안함이 없지 않다. 내가 모르는 영역이고 어떤 방식으로 살게 될지 나도 남들과 똑같이 떠오르는 모양들이 있어서 알고 있다. 요즘같이 아이가 더 기타에 진심으로 매달리는 시간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이 파르르 떨린다. 누구보다 널 지지하고 밀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누구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불안을 만든다. 결국 어느 순간에 한 번쯤은 후회를 하게 되겠지. 괜찮을까. 생각이 늘어진다. 그러나 나는 의식적으로 예측을 멈추려고 한다.


최근에 아이는 학교에서 서른 살의 자기를 상상하는 글을 썼다. 아이는 기타만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을 하고 있을 자신을 상상했다. 어른들은 미래를 직업으로 단정 짓지만 아이는 아니다. 그냥 그 어느 언저리에서 어떤 모양새로든 살겠다는 아이의 순진한 말들이 글 안에서 넘실거렸다. 근데 또 모르지. 언제 갑자기 기타나 음악에 싫증이 날 수도. 그러니까 그냥 두면 좋겠다.


돈 못 벌면 길에 난 풀 뜯어먹고 산다는 아들의 말에 사람들은 웃지만 나는 아이의 강단을 믿는다. 진짜 솔직히 졸라 멋있다. 진짜 그런 순간이 온대도, 휘청거리고 후회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니까 그냥 가는 길 가셔요. 이러다 울 아들이 의대라도 가면 다들 배아파 죽겠어. 근데 그런 일은 없으니깐. 당신들의 배는 안녕하니깐. 각자 행복합시다.


그리고 우선 너부터, 제일 행복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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