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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r 06. 2020

공포와 혐오

2020년 2월 2일의 기록 옮기기




1월 21일에 독일에 도착했다. 설날도 땡땡이치고 나만 왔다. 보름 간의 여정이다. 큰아이 초등 입학 전 누릴 수 있는 나의 마지막 방학. 1,2월 꽉찬 남편의 출장. 모든 것은 그럴 듯한 이유가 되었다. 독일 사촌언니네를 베이스로 여러 도시를 다니며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가끔 소화불량과 부정출혈, 새벽에 눈떠서 한국 일 처리하기 등을 겪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었고 보고싶다. 카카오톡으로 아빠와 엄마, 남편과는 연락을 자주 주고 받지만 아이들과는 그럴 수 없으니 더 그런가보다. 수요일에 한국가는 비행기를 탄다. 독일이건 프랑스건 마스크를 한 사람이 없는데 마스크랑 소독제는 온동네 동이 났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남은 것을 쓸어왔다. 귀국준비는 이쯤이면 되었다. 아 물론 열심히 사다나른 쇼핑품목들도 있다.

타지에 있는 2주동안 온세계가 시끄러웠고 내가 한국을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기사문이나 지역카페, 페이스북 피드뿐이었다. 어떤 일이든 각 채널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기사문과 지역카페 두 곳, 페이스북 피드는 어떤 사건이건 각기 나름의 온도를 유지한다. 재미있다. 모든 일에 그렇게 각자의 온도가 있다는 게. 그리고 웃기다. 모든 일에 이토록 같은 온도라는 게. 들끓는 곳은 어떤 일이건 그만큼 들끓고, 차가운 곳은 어떤 일이건 그리 차다. 공동체란, 집단이란 이런 거다.

또 타지에 있는 동안, 특히 요며칠 나는 아시아인으로서 아시아인 기피 현상을 그대로 맛봤다. 우리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 중 소수는 우리를 보고 입을 가렸고 고개를 돌렸고 키득거렸다. 식당에서 젊은 유럽년(...)이 우리를 보고 폴라티를 당겨 얼굴을 가릴 때는 잠시 화가 났지만 이런 일을 수없이 겪을 많은 이민자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동시에 멀리서 중국인을 보고 흔들리는 나의 동공과 콧구멍을 떠올리며 이중적인 나를 다시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나 혐오는 쉽다. 공포는 그것을 당연하게 만든다. 한편 그 한치의 의심도 없는 당연함을 어느 누가 무너뜨릴 수 있을까 묻다 보면 또 숙연해진다. 모두 공범이다. 당장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와 공항이 걱정이고 남편의 출장이 걱정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거머쥔 공포는 아마 앞으로 이름만 달라지고 계속 더 심하게 반복되겠지.

매일 맛난 거 먹고 흥청망청 돈을 써대면서도 자꾸 이런 생각들이 맴돌았다. 행동과 생각이 같기를 바라는 나와, 당장 내 안위와 내 욕구에 급급한 나 사이의 충돌이 거북해서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삼 일 뒤에 돌아가니까 나 스스로를 위해 정리해본다. 덧붙여 오히려 할 게 없으니 그동안 대강 보던 페북의 긴글 피드들을 정독했는데 그러다보니 나도 오랜만에 긴 글을 쓰고 싶었다. 설리 죽음 이후 내 일기도 멈췄으니 쓸 때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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