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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r 17. 2020

코로나19에게 고마운 게 있다면

작년 가을 쯤 유난히 아이들이 아까웠다. 나보다 더 빠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꾸만 더 푸르러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깝다고 몇 번씩 혼잣말을 했다. 아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훌쩍, 내 곁을 떠날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좀먹었다.

나는 매우 바빴고 바쁠수록 이상하게 더 그랬다.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내가 평일에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하루 네 시간은 될까 싶었다. 아마 앞으로는 그 시간이 더 짧아질텐데 이 아까운 시절을 이렇게 보내는 게 맞나 여러번 되물었다. 물론 답은 없다. 나는 일을 하니까.

그런 생각들이 쌓여 나는 수업이 없는 날에는 내 걸음으로 15분쯤 걸리는 유치원에 아이들과 걸어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사탕을 하나씩 물려 또 걸었다. 차로 휙 내려주고 태워오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야기거리는 계속 생겼고 나란히 걷거나 앞뒤로 걸으며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오가는 5분에 비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나란히 걸어가는 두 아들의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달큰해졌고 다음 해면 학교를 가는 큰 아이를 보며 마음이 아렸다. 작년 가을부터 유난히 그런 마음들에 시달렸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일상은 언제나 바빴다. 내가 방학을 해도 아이들은 유치원과 태권도를 다녔고 나는 벌여놓은 다른 일들을 또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꾸 조바심이 났다. 이대로 가도 되는 걸까.

많이 아까웠다. 아이들의 시간이.

그러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됐다. 아이들의 짧은 방학은 길어졌고 또 길어졌고 아마 또 길어질 것이다. 나의 방학도 함께 길어졌다. 이번만큼은 내 직업에 감사했다. 이런 날들에 아이들과 오롯이 있을 수 있음에 행복했다. 자꾸 달아나던 시간을 우리 안에 묶어둔 기분이었다.

우리는 요즘 쫓기거나 좇지 않고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아이들과 비슷해보이지만 날마다 다른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코로나19에게 고마운 게 있다면 이것이다. 아이의 졸업식을 빼앗고 입학식을 미루게 했지만, 그렇지만 이렇게 우리끼리 꽉 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시간이 많으며 각자 숟가락을 들고 밥을 떠먹을 수 있다. 각자 앉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같이 모여 웃다가 화내다가 소리지르다 노래를 부른다. 어떤 일이든 함께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우리가 딱 적정하게 자란 이때, 우리에게 처음으로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은 내게 매우 귀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기어이 지독한 코로나19에게 고마운 게 생기고야 말았다.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간을 준 것. 지금 이 때쯤 꼭 필요한 시간들을 강제로 만들어준 것. 아이들이 엄마랑 집에서 매일 놀아서 좋다고 말하게 하는 것. 무엇보다 나의 불안과 조바심을 지연시킨 것. 내 의지만으로는 하기 어려운 귀한 시간을 준 것. 그러니 고마울 만하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오늘은 여전히 괜찮았다. 모두를 앓게 하는 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의 행복을 고하는 이 이기심이 조금 부끄럽지만.

어쩌겠나. 이 모든 것도 나의 기록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