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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r 23. 2020

디지털, 책임도 못 질 거면서




디지털이라는 말은 식빵이나 거울 같은 단어처럼 어느새 당연한 일상어가 되었다. 언제 어디서 들어도 어색하지 않고 어느 곳에 끼워 넣어도 말이 되는 그런 단어. 언제 봐도 이상하지 않을 거울이나 언제 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식빵처럼 디지털은 그냥 자연스러운 단어다.



다만 문제는 언제나 사람이다. 책임지지 못할 디지털을 이토록 확장만 시킨 사람들이 언제나 문제다. 사람이 만든 것은 다 사람이 제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뻔뻔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당장 눈앞에 많은 문제들이 보인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도 그렇다. 이것도 결국 인간이 자만하고 있던 문해 능력의 한계치를 똑똑히 보여준다. 흰 것은 면이요, 깜박이는 것은 커서요, 검은 것은 글자요, 하는 시대. 글의 진실성이나 맥락은 관심도 없고 앞뒤 다 잘라내고 진실을 왜곡하는 글을 가려낼 줄 모르는 그 무지한 눈들. 디지털에 농락당하는 문해 능력. 쏟아지는 정보의 양에 짓눌려 바른 정보를 찾아내기 위한 어떠한 지성적인 노력도 하지 않으니 늘 지고 만다.



n번방에 대한 내용은 3월 9일에 국민일보 연재기사 첫 편에서 확인했었다. 취재기사 형식으로 쓰인 그 기사를 보며 나는 정말 진심으로 구토를 할 것 같았다. 디지털 세계에서 이렇게 전문적이고 지능적으로, 현실세계보다 더 악랄한 방식으로 죄를 짓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디지털 세계에서는 유사 살인이 계속 일어나고 있구나. 할 말이 없어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2편 기사는 읽지 못했고 요즘에서야 다시 토론의 장으로 나온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책임지지도 못할 이 디지털의 영향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죽어나가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잊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지...



더 문제는 그런 문제의식 없이 디지털에 중독되어가는 모두에게 있다.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나를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매 순간순간을 버텨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너무 당연히 그것에 자기를 담근다. 나는 없었던 것처럼.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고 그저 함께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을 것처럼. 존재적 특성 없이 함께 끈적하고 더러운 덩어리가 되어 사라질 것처럼.





그래서 나는 미래가 별로 궁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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