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하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쉼표 Apr 28. 2020

"관종"과 "진지충" 그 사이




SNS 활동을 많이 하면 관종, 어떤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긴 글을 쓰면 진지충. 사람을 규정하기는 참 쉽다. 식당에서 아이가 울면 엄마는 금세 맘충이 되고 무언가에 불편함을 느끼면 불편러가 되며 눈에 조금만 거슬리는 성인 남성은 한남충, 과거를 회상하면 라떼, 명품을 좋아하면 된장, 살이 찌면 확찐자가 되는 요즘이다.



이게 정말 다 재치와 유머에서만 비롯된 것일까. 남과 나를 구분 짓고 남을 평가하고 재단하고 범주화하려는 그런 욕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까. 남을 비하하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나는 이상하지 않고 정상이라는 자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까.



이런 맥락에서 요즘의 신조어들을 다시 보면 그 말들이 얼마나 자주 사람을 향하는지 깨닫게 된다. 개개인의 생각이나 선택은 애초에 존중받을 기미가 없다. 그저 개개인의 특성을 쉽게 단순화하고 쉽게 폄하하며 또 쉽게 우스갯거리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신조어가 태어난다.



사실 저 말들을 하나씩 떼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생각해봐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저 말로 하여금 삭제되는 개인의 이야기들. 저 말로 하여금 소거되는 개인의 취향들. 저 말로 하여금 상처 받는 수많은 개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남들을 자기와 다른 집단으로 범주화하고 그 집단을 다수로부터 도려내는 인식의 틀. 그러면서 여전히 다수에 남겨진 자기 자신을 다수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며 안도하는 사람들. 남을 비하하고 남을 밀어내야만 생기는 정체성이라면,




글쎄요.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특정한 말을 반복적으로 쓸 때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지겠지.



문제는 그 공고해진 생각으로 타인을 향한 악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쓸 때, 자기 내면은 서서히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의 말법으로 자기가 깨지는 경험들. 그것의 반복.




여전히 즐거울까.

여전히 히죽거리며 그 말들을 쓸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상처는 느닷없이 오기도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