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부터 환절기가 끔찍했다. 얼굴에 난 구멍이라는 구멍에서는 모조리 알레르기 반응이 났다. 눈알부터 코, 귀, 입까지. 기관지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모든 구멍을 틀어막고 싶게 괴로웠다.
환절기 알레르기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눈이 간지럽거나 콧물이 나거나 재채기가 나거나 귓속이 간지럽거나. 무엇 하나가 시작되면 다른 것은 연쇄적으로 따라왔다. 몇 분 사이에 나는 금세 얼굴이 시뻘개지고 퉁퉁 부었다.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나고 귀가 간지러워 너무 괴로운 환절기. 비염이라고들 하지만 비염이라는 두 글자로 축약하기에 내 증상은 너무 막강했다.
매 환절기마다 이비인후과를 다녔다.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다녔고 그것은 매 계절을 맞이하는 행사와도 같았다. 갈수록 공기질이 나빠지니 알레르기는 더 심해지기만 했다. 아이 둘을 낳고는 이제 피부 알레르기에 시달린다. 농담 삼아 너네가 엄마 몸의 기름기를 다 빼가서, 이렇게 내 몸이 버석하게 말랐구나 말한다. 피부도 느닷없이 가렵고 부풀어 오른다. 여전히 힘들다.
더 힘든 것은 이 어려움을 큰아들이 고스란히 이어간다는 점이다. 나와 같이 훌쩍대고 재채기하고 눈이 붓는다. 비슷한 온도, 비슷한 습도, 비슷한 바람결에 함께 반응한다. 그것으로부터 무기력해지고 몸이 더 피곤해지고 짜증이 쉽게 나는 걸, 나는 아이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왜 굳이 이런 것을 가져가는가. 왜 나의 이런 점이 너에게 가는가 물으며 나는 꽤 자주 속상해했다.
얼마 전 아들들이 외할머니네 갔을 때였다. 내 엄마는 큰 아이가 심상치 않은지 약을 지어오라며 연락을 해왔다. 아이의 얼굴이 선했다. 콧물이 꽉 찬 아이의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린다. 너무 힘들겠고 너무 속상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저 환절기가 어서 지나가기를, 그때까지 잘 견디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날들이 지나고 성큼 여름이 왔다. 아이는 더 이상 코를 간지러워하거나 눈을 비비지 않는다. 대신 피부를 긁적인다. 어릴 때 아이 알레르기를 알고 싶어 대학병원에서 피검사를 했었다. 그때 아이는 나무나 풀에 있는 곰팡이균에 아주 높은 반응 수치를 보였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반응 앞에선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집안 환경이나 식습관 조절로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의사도 그렇게 말했다. 이건 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요즘 단독주택에 사는 양가에 번갈아 놀러 가거나 종종 캠핑을 가서 그런지 아이 몸은 수시로 간지러웠고 알레르기로 두드러기가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때마다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었다. 가만히 있노라면 습관처럼 어딘가를 긁고 있는 아이를 보는 일은 내게 참 버겁다.
심한 질환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일은 전혀 없으니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힘든 것은 나의 어떤 면들이 아이에게 그대로 갔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굳이, 왜, 그래야 하는지 따져 물을 때도 없어서 더욱 그렇다.
아이를 아픔을 보며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어느 책 속에만 있을 것 같은 말들을 늘 떠올린다. 나 때문에 나 같은 일상을 살아야 하는 아들이 짠하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