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끔찔끔 온라인 강의가 연장되던 이번 학기. 곧 종강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번 학기 내가 출강하는 학교의 내 과목들은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공교롭게도 세 학교 모두 이번 학기를 전체 온라인 강의를 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고 1주씩, 2주씩 미루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는 학교를 가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고 또 그래서인지, 종강이 당황스럽고 갑작스럽다.
세 학교 모두 비대면 강의였지만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webex를 이용한 실시간 화상강의도 있었고 전체 녹음강의도 있었다. 화상강의와 녹음강의가 질적으로 크게 다를까 생각했던 나는 몇 번의 수업만으로 금세 깨달았다. 두 수업은 온라인 강의라는 공통점 말고는 같을 게 전혀 없었다. 비대면이라 하더라도 실시간 화상강의는 생각보다 많은 장점을 갖고 있었으니 이는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이든 간에 온라인 강의, 즉 비대면 강의로 진행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많은 사람들은 염려했고 걱정했다.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혹은 사전에 막으려고 많은 애를 썼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고민하셨고 새로운 방법을 애써 찾으며 또 공유해왔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나도 역시 모두가 처음 겪는 이 일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종종 예상치 못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절에 관한 것이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는 학생들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말보다는 글이었다. 적게는 20명, 많게는 50명이 있는 실시간 화상강의에서 학생들은 발표나 토론 외에 할 말은 주로 채팅창을 이용했다. 녹음 강의로 진행하는 학교는 더더욱 말을 주고받기 어렵다. 모두가 글로써 소통했다. 공지를, 댓글을, 질문을, 답변을, 과제를, 첨삭을 모두 글로 대신했다.
그러다 보니 글자로 하는 대화의 예절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종종 어떤 학생들은 맥락 없이 툭 어떤 이야기를 이메일로 보낸다거나, 긴 피드백에 "그래서 다시 쓰라는 말인가요?"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정중히 개인적인 첨삭을 부탁하고는 내 첨삭을 받고 나서 소위 먹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글로써 메시지를 전달할 때에는 자기가 누구인지 먼저 밝히고 어떤 일로 연락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끝맺는 인사를 하는 그런 글 소통의 방식을 모르는 학생이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꼰대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자기 점검을 해왔다. 그러나 이쯤 되면 드는 생각이 내가 꼰대이거나 말거나, 예절이라는 것은 어떤 관계에서 필수적이라는 생각으로만 남겨진다.
얼굴을 맞대지 않고 글자로 소통하는 문화는 온라인 강의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키보드워리어라고 불리는 악플러들 역시 글자로 독백을 쏟아붓는 사람들이다. 공간의 무한성을 생각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게 꼭 악플러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이 시대는 얼굴을 맞대지 않은 상황,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예절을 지키며 정성껏 글로써 예를 표하는 게 낯선 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마 나를 불쾌하게 했던 여러 글들의 주인을 실제로 만나면 나는 이만큼 불쾌하지 않을 것이다. 잘 알고 있다. 늘 그랬듯이 교실에서 학생들은 다시 쭈뼛거리거나 예의를 차리거나 수줍어할 것이다. 그 수줍은 학생들이 왜 유독 글자 앞에서는 자유로워지는가. 왜 유독 온라인상에서는 자유로워지는가. 온라인과 텍스트.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해방감을 주는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절이라는 것도 이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왔다. 단순히 대접받고 싶다거나 계층의 구조를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어야 하는지, 그게 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글에서 그 예절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하는지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혹시, 나에게만 중요한가?
나는 오늘도 여전히 자기 점검을 하며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