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하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쉼표 Jun 17. 2020

지독하게 애매한 사람






반성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몰아치는 날에는 책장 앞에 선다. 오랜만에 수업과 관계없는 책을 뽑아 들었는데 아들이 옆에서 베이블레이드 시합을 하자고 한다. 너도 책 읽자 했더니 말도 안 되는 포켓몬스터 도감을 들고 와서 얘 얼굴이 어딘지 맞춰보라는 둥, 얘 전투력이 몇이라는 둥 말을 걸어댄다. 그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심드렁하게 대답을 해주며 책을 읽다 보니 오후가 되었다. 이 말인즉 아이는 학원에 갔고 나는 수업 준비를 할 시간이 왔다는 말이다. 바람은 선선하고 세상은 소란스럽고 나는 여전히 세속적이다. 이 욕망스러운 삶을 떨쳐내고 싶다가도 이미 이 생은 망했다고 읊조린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거미를 보고 노루를 보고 스러져가는 동무를 보고 진정으로 슬퍼서 울음을 짓고 시를 지으면서 동시에 당대에 손꼽히게 유명한 모던보이였던 백석 시인이 종종 생각난다. 내 석사논문 대상이었던 백석 시인은 정말 그 모던함을 좇는 욕망과 그 욕망을 붙드는 선한 마음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았을까. 멋지게 차려입은 자신과 맨발로 선 동무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백석은 어떤 심정으로 견뎠을까.



세상은 언제나 양극단으로 뻗쳐나가고 나는 늘 애매한 언저리에 서서 애매한 태도로 살아간다. 이 지독하게 싫은 애매함.




으!






매거진의 이전글 침잠은 남의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