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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처지

by 쉼표



우리 엄마가 예전부터 자주 하던 이야기.


"부모가 자식한테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고 이야기하는 거 너무 웃기다. 자기가 낳아놓고, 자식한테 할 일을 한 것인데 왜 그것을 자식에게 되묻냐."



그래서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그런 원망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정말 우리 부모님은 속으로도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따금 자식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보상받으려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내 의지로 낳은 아이이지만 그 의지에 따르는 후폭풍이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크기의 것이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종종 버겁다. 간혹 심드렁한 표정으로 너가 없었다면, 하는 부모답지 못한 상상도 한다. (부모답다는 것은 사실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이지만 그래도 세상의 판단 속에서 자유로워지기란 쉽지 않으니까)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시간, 그것도 가장 귀중하고 활발한 이 시기의 시간을 탈탈 털어 넣는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물론 크지만 내가 들이는 시간에 비하면 그것은 순간이자 찰나다. 순간으로 영원을 버티라니 이건 좀 슬픈 일 아닌가. 그러니 뭔가 보상을 바라게 되고 그것이 내 시간이 켜켜로 쌓인 자식에게 가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 하는 데도 내 시간이 오롯이 들어간다. 낮잠을 자지 않고 버티다 졸려서 어쩔 줄 모르게 힘들어하면서 그래도 절대 안 자겠다는 아이와 씨름한 지 두 시간째. 이제야 잠이 들었다. 두 시간이 뭐 별 건가, 내게 온전한 두 시간이 주어진다면 난 대체 얼마나 생산적인 일을 할텐가, 되물어보지만 어쨌거나 타의에 의해 시간이 뺏기고 분절되는 건 싫은 일이다.



결혼생활은 인내의 총합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인내 종합세트를 이 생활로 인해 시작한다. 그 가운데 오는 행복감도 분명 있다. 사랑하고 날 아껴주는 남편과 아이도 얻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그 모든 인내를 감수하는 것이 맞는 건가. 정말?



등떠밀려 한 결혼도 아니고 남들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내발로 결혼제도 속으로 걸어 왔다. 종종 생각하건대 나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문제가 수월해진다. 내가 언제까지 나를 주장할지 모를 일이지만 내가 나를 주장하는 그날까지 나는 늘 이러한 괴로움을 안고 가야 할 것이다.



결혼제도 속에서 어른이 태어난다. 이만큼 지내다보니 어른이 된다는 건 그리 훌륭한 일이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포기를 하고 남을 반만 이해하고 내 말을 하지 않으면서 어른이 된다. 이는 겸손하고 너그럽고 인내할 줄 안다는 좋은 말로 포장된다. 어른. 그게 뭐 별건가.



욕심많은 사람들이 자의와 타의에 의해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무언가를 내려놓고 포기한다. 힘이 빠지며 여유를 얻는다. 힘 대신 여유. 그게 어른의 장점인가. 나도 그 수순을 밟을 수 있을까. 아니 사실 밟고 있나. 나는 어디쯤 왔나.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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