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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Jun 25. 2020

함께 읽기 시작했다

글에 관심 없는 초1 아들과 책 읽기





아들은 한글을 늦게 깨친 편인 것 같다. 나도 한글 떼기에 큰 관심이 없었고 책을 읽어주면 글자에 대한 관심보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던지라 그 시간을 지켜주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키며 읽으면 애들이 한글을 빨리 뗀다는데 난 그림 보는 아들의 시선을 내 손끝으로 옮기고 싶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한글을 읽고 쓰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그림에도 한글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친구들이 많아질 무렵 아이가 괜찮을지 궁금했다. 엄마가 그래도 국문학 박사인데 우리 아들의 문해 능력을 너무 내버려 두나, 살짝 염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별로 상관없어하는 모양새였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내 예상보다 덜 불편해했다. 어느 날은 우리 동네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아이는 자기가 아는 글자와 기호로 우리 동네를 표현했다. 유치원 이름은 한글로 쓰고 병원은 병원 기호를 그려 넣었다. 누가 봐도 그곳은 병원이었고 유치원이었고 우리 동네였다. 몇 안 되는 문자와 기호로 어떻게든 표현을 했으니 그것도 기특했다.



나랑 기적의 한글을 펴놓고 낱자음, 낱모음을 조금씩 하던 게 7살 중반이었다. 드문드문 읽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날 더 많은 글자를 읽었다. 쓰기는 약했고 지금도 여전히 맞춤법은 틀리지만 차차 익숙해질 것이고 익숙해지고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언제나 통글자 학습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기에 나에게, 아이에게는 이게 더 편안했다.



다만 하나 염려는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다독을 권장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다독도 장점이 있지만 결국 독서가 이로우려면 한 권 한 권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씹어 먹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책을 몇 권 읽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으며 그걸로 아이의 독서습관이나 독서능력을 가늠할 생각도 전혀 없다.



아이는 여전히 아빠가 자기 전에 읽어주는 책을 좋아하고 책을 펼치면 구석구석 그림을 본다. 그림에 영 소질도, 관심도 없는 내게 그림을 잘 그리고 즐기는 아이는 늘 생경하다. 언제나 대수롭지 않았던 삽화의 중요성도 내 아이를 통해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스스로 글자를 읽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뒷 이야기를 상상하는 독서의 과정을 더 미루기는 아쉬웠다. 독서는 능동적인 작업이다. 독서야말로 자기 주도적이며 자기 독립적이다. 그것은 무엇이 대체해줄 수 없는 특수한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인 묵독을 낯설어하는 아들과 책 읽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러움보다는 의도적인 독서였지만 그래도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아이는 생각보다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이런 읽기가 즐겁다고 했다. 억지로 일기를 써 버릇하는 것보다 읽은 책으로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게 더 낫다는 내 판단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책은 내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권했다. 익숙해지면 아이가 고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주도한다. 아이는 제목을 보고 상상하는 책 내용을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아이 눈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초반 몇 장은 아이가 읽고 나면 무슨 내용인지 묻고 답해봤다. 여기가 어디래? 오, 누가 놀러 왔어? 하면서 말이다.



그 뒤로 아이는 혼자 묵독을 했다. 이때 아이는 그림을 보며 웃고 예상과 다른 전개에 나를 크게 부르기도 했다. 말이 많은 우리 아들은 다 읽고 나서 내가 묻기도 전에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그 기세를 밀고 갔다. 집에 그림일기 공책이 있길래 거기에 읽은 책과 관련된 그림을 그려보자고 했다. 무조건 자유. 책과 빗나가도 좋으니 아이가 스스로에게 남은 잔상을 표현해보는 게 목표였다. 아이는 유령이라는 대상에 맞게 오싹함을 표현하려고 글자를 흔들흔들 쓰고 생일파티를 한다는 상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책의 내용이나 아들 생각을 써보게 했다. 이건 기본적인 독서록 쓰기와 비슷하다. 물론 엄마인 내 눈에 그렇게 뛰어난, 유의미한 기록은 아니지만 ㅎㅎㅎㅎ 지금은 기록의 질보다 기록의 습관을 다지는 때. 아무말대잔치라도 아이가 읽은 책에 대해서 무언가 써보는 이 경험의 누적이 가져올 효과를 기대해본다.



하루에 한 권. 이렇게만 해도 아이는 묵독에 익숙해지고 책 읽기를 스스로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다른 공부는 몰라도 이 부분에서는 완전한 조력자가 되어줄 수 있으니 좋다. 책 난이도가 올라가면 독후활동도 만들어줄 생각이다. 왕년에 아르바이트로 하던 일을 내 아이를 위해 무보수로! ㅎㅎㅎ 생각해볼 만한 거리로 퀴즈를 만들 수도 있고 이후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아이가 한 권씩 천천히 책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함께 해야지.



정말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슬프게도 수학 영어...같은 주요 과목은 다 내 소관이 아니다. 다만 평생 자산이 될 이것... 그리고 생각하는 힘... 내적인 힘을 위해서...... 함께 할 수 있다. 물론 아이가 내가 짠 길대로 오지 않겠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게 이 영역인 게 나는 감사하다.



아들,

엄마가 몸은 늙어가도

생각이나 정신은 늙지 않도록 노력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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