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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Jul 01. 2020

 탈출구가 없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답 안 나오는 일을 겪을 때마다 습관처럼 "아 이민 가고 싶다" 외쳤다. 사실 이민을 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고 이민이 가지는 예측 못할 어려움들 역시 전혀 고려치 않고 그냥 한 말이었다. 그 노답의 상황에 대한 갑갑함.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마음. 그것을 한마디로 퉁치기 했던 것, 그뿐이었다.



그 상상 속의 탈출구마저 소거당한 게 바로 요즘의 삶이다. 여기나 저기나 나은 구석은 없고 답답할 때마다 계획했던 여행은 기약이 없다. 하다못해 비행기표를 찾고 호텔아고다를 들여다보면 느닷없이 평화가 오기도 했는데 이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가까운 제주라도 가볼까 하다가 역시 엄두가 나지 않고 그보다 더 쉬운 강원도나 부산만 몇 번 보는데  또 그마저도 휴가철과 코로나로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숙소 잡기부터 막힌다.



코로나를 핑계로 꿈꾸던 캠핑을 시작한 우리 남편. 그 덕에 그나마 밖에서 기운내고 숨 돌리는데 날이 더워지고 캠핑장도 성수기라 매일 들여다보며 양도 나온 곳을 잡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가가 모두 주택에 산다는 것. 자연을 건드려 호되게 당하는 인간은 여전히 자연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 불멍 대신 산멍, 나무멍하며 마스크 없이 앞마당에서 놀 수 있으니 요즘 같을 때 이것은 더 큰 복이다.



모두의 숨이 헐떡거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은 피로도가 높다. 목구멍에서 딸깍거리는 이 피곤들이 언제 어디서 이상하게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코로나만큼 염려스러운 순간들. 분노에 쉽게 잠식당하는 요즘의 우리라서 더더욱 걱정이다. 화와 분노로부터 나를 지키는 평정심이라는 게 움틀 수 있기는 한가. 각자 고군분투하는 이 삶들이 지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달팽이와 강낭콩과 무순과 루꼴라와 고수는 매일같이 단단하게 자라나니, 그리고 그 시간만큼 내 아들들도 자라나니, 이 날들은 그저 계속 지루하지도 계속 대단하지도 않은 날들의 이상한 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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