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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세상은 행복해 보여

by 쉼표




모두에게 행복은 그 모양도 이유도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교하자면 큰애보다 작은애가 더 세상을 행복하게 누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기 때부터 대체로 긍정적이었고 잘 웃었고 모든 순간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 즐겼던 작은애의 모습이 그 이유였다. 작은애는 새로운 것을 마주할 때마다 늘 열심이었고 늘 제일 즐거워 보였다. 다니는 기관마다 그런 평을 받기도 했다. 반면 큰애는 새로운 것을 대하는 데 시간을 필요로 했고 호불호가 분명했다. 그래서 대체로 호였던 작은애가 상대적으로 더 즐겁게 삶을 누리겠구나, 나처럼 어딘가 심각하고 진지하고 종종 튕겨나가는 큰애는 나처럼 약간의 심란함을 늘 어느 한구석에 지니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좀 생각이 달라졌다. 매사에 충실한 작은애는 그래서 모든 일에 욕심이 많다. 주변과 자신을 견주고 모든 것을 잘하고 싶어한다. 작은애의 세상은 이 세계 그 자체다. 반면 큰애는 큰애만의 분명한 세상이 있다. 쉽게 잊고 대체로 자기감정을 우선 생각한다. 성가신 것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싫은 것도 마찬가지. 방금 세상 무너지게 혼났다가 2분도 안되어 노래를 부르고 웃는다. 꼭 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큰아이는 나쁜 순간이나 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 뒤끝이 없다는 말로 설명하면 좀 쉬우려나.



오늘도 식탁을 쇠로 긁어 혼났는데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린다. 잔뜩 찡그리며 억지로 영어 REP를 하다가 갑자기 한곡 반복하기를 설정하고 노래하며 춤을 춘다. 나는 아직 그 혼내는 감정으로부터 한 걸음도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아이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같은 감정으로 요동치다가 예고도 없이 혼자 다른 감정선으로 달려 나간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허무해진다. 공감능력이 없나, 생각해봤지만 그렇지도 않다. 주변을 볼 줄 모르나, 역시 그렇지도 않다. 아이는 오늘도 모든 계절은 다 아름답다고, 오늘같이 비 내리는 여름은 우산 위로 또르륵 예쁜 소리를 내주고 거미줄에 물방울을 매달아 더 멋지게 해 준다고 말했다. 거미줄은 내 고등학교 때부터 늘 시의 소재가 되었던 터라 아이의 그 말이 너무 놀라웠다. 여름의 해는 뜨겁지만 꽃을 아름답게 해준다고도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아이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향하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결론은 그저 아이의 세상은 행복하다는 것. 이런 결론을 내려도 될까, 늘 불안한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아이를 오래도록 밀착해서 보면 이리 말해도 될 것 같다. 아마 큰애는 큰애대로 작은애는 작은애대로, 우리가 각자 그런 것처럼 자기 세상과 자기 행복을 구축해가겠지.





다행인가, 다행이지. 그렇겠지.




창밖으로 아이를 내다보는데 걸음이 더뎌진다. 학원 차 시간이 다 되어가 베린다 창문을 열고 아이를 보채는데 엄마아! 달팽이! 하며 손바닥을 내민다. 10층에서 내려다보는 내 눈에 달팽이는 보이지 않지만 그 손바닥에 자국을 내며 기어갈 달팽이를 바라보는 네 눈과 네 행복은 보인다.




그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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