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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Aug 07. 2020

CCTV 속 서울, 아름다운 이유



매일이 재난 같은 2020년. 그 한가운데 놓인 이 시기를 가로지르는 거센 비바람. 코로나로 새로 쓴 일상은 또 다른 이유로 가로막혔다. 우리는 요즘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지 날마다 확인받는다.



자연을 잘못 건드려 호되게 당하는 중인 인간은 자연이 하는 일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없다. 지난 새벽, 몇 시간 뒤 있을 남편의 출근길을 CCTV로 들여다 볼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몇 개의 CCTV를 보다가 예상치 못한 생각을 하며 멈칫거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실제면서 실재인 앵글 속 화면들 때문이다. 나는 마치 어떤 작품을 대하듯 화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새벽 2시 40분. 거기에는 참 생경한 장면들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빗물이 찼다가 나간 자리를 정리하는 차가 있었고 통제를 위해 여전히 번쩍이는 경찰차가 있었으며 낮 2시처럼 어디론가 바삐 달리는 차도 있었다. 앵글 너머에는 보편이나 평균이라는 삶의 시간, 으레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과 무관한 각자의 시간들이 평소보다 더 분주하게 놓여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침대에 누워 실시간으로 도로를 볼 수 있다는 기술의 발전에 놀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것은 별 것 아니었다. 우리네 삶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간략하고 명확하게 요약될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점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곧 많은 비를 머금은 이 도시가, 비유적인 의미로 아름다워 보였다. 자연의 분노와 응징을 겪은 이 폐허 같은 도시는 바짝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는 자연의 시간, 인간 개개인의 시간을 헤아릴 가능성을 미약하게나마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아마 지금보다 더 자주 자연의 시간과 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며 또 내가 아닌 타인의 시간과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도시에서 매일 마주해온 익숙한 자연과 사람, 시간과 공간을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해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타인과 삶도 헤아려야 한다. 누구든지 지하차도에서 갑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며 누구든지 가족을 구하려다 실종될 수 있고 누구든지 누구든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순간의 운이 좋아 이 자리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새벽 내내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놀 수 있는 이유, 남편이 아침에 편안하게 출근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인력, 그리고 그 인력이 절대 할 수 없는 자연이 만들어내 준 것이다. 지난 새벽    CCTV 속 바짝 엎드린 서울은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절대적 의미가 아닌 매우 다층적인 의미의 이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다 바스러진 도시 안에서 그것을 재건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것은 결국 자연이다. 그리고 그보다 미약한 인간이 인간의 질서를 위해 또 밤낮으로 애쓰고 있으니 이것을 더이상 모른 체 할 수 없다. 나는 이 도시가 새벽 내내 뿜어내는 저 몸짓을 아주 오래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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