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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Aug 25. 2020

수많은 온라인 족적을 지우며



문득 생각해보니 여기저기 조각난 나의 이야기들이 참 많다. 어떤 sns든 큰 거리낌 없이 해온 나는 은연중에 당시 나의 이야기들을 흩뿌려놓았다. 더욱 그러한 게 나는 나를 고백하고 나를 쓰는 데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제대로 글을 배우며 가장 중요하게 배웠던 게 나를 드러내는 것,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의 진정성이 드러난다고 배웠다.



그 배움과 내 잘난 맛에 사는 내 성격이 만나 나는 나를 글로써 드러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특정 하나의 채널만 고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저기 내 족적이 남아있다. 요즘 문득 그 족적들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오늘 그냥 별생각 없이 나의 족적들을 지웠다. 일단은 네이버 카페나 다음 카페에 올려진 내 글과 댓글들을 한꺼번에 날렸다. 아마 또 어디 남아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 기억에 박혀있는 채널들에서 나를 지웠다. 그곳에서 나는 이제 게시글0 댓글0인 사람으로 리셋되었다. 방문 횟수는 그대로 남겨져 있지만, 내게 대댓글을 남긴 사람들의 말은 그대로 있지만 내가 말의 시작점을 지우거나 짝말을 지웠으니 그 말들은 온전치 않다. 나로 인해 온전한 대화가 기울어진 게,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남은 족적은 블로그와 여기. 그리고 페이스북이다. 모두 텍스트로 생동하는 곳이다. 페이스북은 거의 방치 수준이지만 여러 방식으로 내 날들이 기록되어 있어 다시 보는 재미가 있다. 아마 나는 이 곳들은 계속 유지할 것이다. 내 젊은 날의 기록들, 내면에서 전쟁처럼 다뤄진 사고들이다. 여기에 인스타그램을 더하는데 그것은 일상 그 자체이니 그것은 그 자체로 둔다.



현실의 내가 아닌 온라인 상의 나를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남긴 내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몇 년 지난 기록들이 오늘날에도 유효할지 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우리는 이제 과거도 미래도 없는 그런 날들을 산다. 옛날의 경험은 힘이 없고 미래는 우리의 예상을 빗겨난다. 우리는 그저 날마다 주어지는 그 하루를 잘 살아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남겨왔던 그 많은 족적들은 어쩌면 소음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런 긴 글이 아닌 조각난 글들은 더더욱 그렇겠지.



소음을 남기고 소음을 나누고 또 기억하는 삶들이 어쩐지 짠하지만 적어도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이로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게 분명해서, 달리 할 말이 없다. 그저 우리 모두의 글자에 안녕을. 모든 기록에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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