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 검은 햇감자를 한봉지 사서 포슬포슬 조림을 하고, 노지 쪽파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무치면 달겠지. 큼지막한 에코백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는 울긋불긋한 사람들 사이로 섞인다.
나는 주로 즐거운 마음을 장에서 배운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아파트를 빠져나와 느릿늣 5분이면 활기 넘치는 군상을 마주할 수 있다니.
근거리 산책길에는 남편의 초, 중, 고 모교가 있다. 떡볶이가 그렇게 맛있었다던 남산분식과 용돈 모아 NBA카드를 구입했다던 문구점, 농구골대가 있던 역 광장과 유년시절에 살았던 빌라와 단독주택, 아파트까지.
사랑하는 사내가 나고 자란, 곳곳에 그의 추억이 베인 도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알록달록 귀여운 오일장을 마주한 그날부터 나는 이 도시를 더욱 사랑하게도 의지하게도 되었다.
그쯤 만났던 지인들은 이사 가니 좋은지 자주 묻곤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이도시서 제일 큰 전통 오일장이 열리는데 규모며 그 종류가 상당하다고 직접 거둔 거위알이며 귀한 으름 열매, 통통한 둥굴레 뿌리, 붉고 오돌토돌한 꾸지뽕 열매까지 재미나고 희귀한 것들이 많다며 한껏 노랑의 기분이 되어 떠들었다.
어릴 적 할머니 따라 비 비린내 나는 새벽 숲에서 채취했던 노란 오이꽃 버섯을 오일장에서 발견했을때는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모두의 예쁨을 받기에 시골장은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장에 가는 것을 나 또한 좋아했다. 두 팔다리 정정할 적 기분 좋으면 시장 안 보리밥집에서 자주 골든벨을 울렸다. 치마만 둘렀지 목소리 크고 호탕한 여장부였던 우리 할머니.
몇 해 전 가을 그게 마지막일 줄도 모르고 할아버지를 부축해 시장 안에 있던 중국집엘 갔었다. 짜장면 한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내 손녀예요. 조금 오물거리다 말곤 멀리서 차 타고 할아버지 본다고 왔네.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하며 자꾸 웃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작은 눈은 더 작아지고 철 지난 호두처럼 얼굴은 더 까맣고 쪼글 해져, 나는 나를 자랑해주는 할아버지가 싫지 않으면서도 가슴이 아렸다. 조금 더 다정해져 볼걸, 당신이 열어놓은 문 안으로 들어가 볼걸 하는 생각은 하지 못한 체.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면 반성문 같은 마음이 된다. 한동안 테두리 없는 슬픔에 열이 오르고, 목구멍이 자주 부었다.
그러니까 나는 장에 고인 사람들을 보면 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느 시인의 문장처럼 '따뜻하게 목을 조르는 듯한 이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다.
사과가 한 봉지에 만원이에요. 헬레누보스 이 꽃은 월동되는 꽃이라 내년에도 볼 수 있어요. 쏟아지는 말을 귓가에 모으며 삐뚤빼뚤 아무렇게나 걷는다. 그렇게 산책 겸 오일장을 어슬렁어슬렁 돌고 나면 부풀었던 에고가 서서히 줄어들며 제자리를 찾곤 했다.
밀싹처럼 기운이 쑤욱 돋아, 장 구경을 실컷 하고 돌아올때면 젖은 신발 마르듯 묵직한 기분도 날아갔다.
빛깔과 생김새, 향기가 제각각인 꽃과 식물을 천천히 바라보다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한 뼘 크기의 몬스테라와 마주쳤던 날. 잎도 풍성하지 않고 윤기도 덜해 쉬히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었다. 귀엽고 외로운 식물, 그래서 신경이 쓰였는데 그런 이유로 덜컥 그 화분을 사버렸다. 잘 자라 보자. 너를 두고 내게 하는 말이었겠지.
햇살 넉넉한 타월 상점에 금세 적응한 식물은 부지런히 새잎을 틔우더니 커다랗고 싱그러운 잎사귀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잎 하나가 사람 얼굴보다 크다며 오고 가는 손님들의 칭찬을 먹고 자라 나날이 거대해진 초록은 지난해 겨울 쌀랑했던 어느 주말 까맣게 얼어 죽었다.
이럴 순 없는데
이것도 내가 한 짓이야?
몇 해를 함께 지낸 식물의 뿌리를 허옇게 내놓는 일은 생각보다 여의치 않았고, 몇 달을 그리 빛 좋은 구석에 두었다. 그러던 중 손님 한분이 사용하지 않는 화분인지 당신은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안 쓰는 화분이면 가져다가 꽃을 심고 싶다하기에 두말 안코 줘버렸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을까 남편이 어딘가를 가르치기에 가보니 몬스테라가 있던 벽면에 연둣빛 조화 이파리가 덕지덕지 투명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다.
몬스테라 죽고 네가 속상해하는 것을 보고, 아빠가 시들지도 죽지도 않을 거라며 저 잎을 붙여두었다 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오셔서 저 자그마한 잎을 벽에 붙이며 나중에 와서 보면 좋아하겠지 라며 희희 웃으셨다는데 그 장면을 떠올릴때마다 나는 허리를 숙여 능소화 꽃잎을 주웠다.
지난해 8월 제주로 여행을 가던 날 아침. 휴지로 돌돌 만 얼음생수를 내밀며 공항 가며 먹기 좋을 만큼 녹았다. 라며 have a nice trip your father라고 쓴 흰 용돈 봉투를 내밀던 아버님.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 와, 무슨 복이 많아 이렇게 다 갖추고 사나 어찌 갚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다 결국 아무 대답도 못했다.
have a nice trip your father
여행은 끝났지만 아버지의 손글씨가 근사한 봉투는 여적 간직하고 있다.
살아가며 언제고 미세하게 마음 다치는 때있으리라. 그때마다 이 글자들을 잘 개어 발라야지.
겨우 겨우 나무가 자란다. 서툴고 무심한 사람이 별다른 고생 없이 지낼 수 있었던 데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다정한 울타리가 되어 준 어른들의 보살핌이 컸다.
뿌리를 내리면 외롭지 않다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정말이지 나는 늦되는 사람인 것만은 확실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