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의 추억

by 혼자놀기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 버스를 탔더니 아파트 북문 앞에서 내렸다. 늘 지하철을 타기 때문에 거의 남문 쪽으로 들어오다가 오늘은 반대편이다. 잘 오지 않던 곳이라 낯설기까지 하다. 단지가 워낙 커서 북문에서 집까지 7-800미터쯤 걸어가야 한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라 낡았다는 것 이외에는 동간격도 넓고 정원 조성도 잘되어 있어 나는 살기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은 벚꽃 철이니 바람에 벚꽃 잎이 눈 날리듯 떨어진다.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는데, 어떤 동 앞에는 좀 다른 모양이 꽃이 피어 있다. 가까이 가보니 앵두꽃이다. 앵두꽃 본지는 참 오래되었다.

어릴 때 살던 집 뒷동산에 앵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그때는 한성도성길 바로 아래 살았다. 지금은 도성 둘레길로 개발되어 동네는 없어졌지만 우리 집이 어디였는지는 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동산 모습이 아직 남아 있어서이다. 앵두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벽오동, 키다리 포플러 등이 가득했던 그 동산에 지금은 잔디만 남아있다.


앵두나무는 여름에 앵두를 따 먹을 수 있어서 동네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해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국민학교 5, 6학년 시절이었던 듯싶다.


집마당에서 기르던 개가 몇 마리 있었다. 당시에는 도둑이 많던 시절이라 집집마다 방범용으로 개를 많이 키웠다. 가끔 도둑들이 밤에 먹이에다 약을 발라 개에게 던져주고 도둑질을 했다. 다들 못 살던 시절 도둑이래야 좀도둑이었다. 간장독도 훔쳐가고, 고추장독도 훔쳐가기도 했던 시절.. 어느 여름밤에 도둑이 개에게 약을 먹이고 들어와 아버지 양복을 다 걷어갔다. 뭔가 가전제품도 가져갔던 것 같다. 그런데 개에게 먹인 약이 쥐약이었던지 큰 개가 죽었다. 내가 좋아했던 진돗개 잡종견이었는데 이름이 베루였다. 아직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얼마 전 앨범을 정리하다가 베루와 함께라는 쪽지가 목을 껴안고 찍은 사진 옆에 붙어있어서이다.

그 개를 동생과 함께 가장 구석에 있는 앵두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다음 해부터 그 앵두나무에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엄청 커다란 앵두가 달렸다. 동네 아이들은 큰 앵두가 달려 좋아했는데, 사정을 아는 나와 동생은 그 앵두를 먹기가 좀 그랬다. 몇 해 지나면서 다시 앵두는 작아졌다. 비료의 효과가 다했던 모양이다.


그 집을 떠난 게 1980년이니 45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보다도 10여 년 전 이야기니 거의 6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인데, 그때 보았던 앵두나무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신기한 일이다.


옛날 생각이 난 김에 동네 살던 형님, 누나, 친구, 동생들 소식이 궁금해졌다.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니 소식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몇 있다. 올해는 이들도 한 번씩 만나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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