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없는 살구나무

by 혼자놀기

아파트 주차장 옆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4월 벚꽃 피는 시기와 비슷할 때 꽃이 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벚나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벚꽃보다 분홍색이 진하고 개인적 취향이기는 해도 좀 더 우아해 보인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라고 해도 매화가 제일 먼저 피고, 살구꽃이 피고, 벚꽃 순으로 피어난다.


딸이 사는 아파트 마당에도 살구나무가 세 그루 서있다. 오늘 아침 손주를 만날 일이 있어 가면서 보니 노란 살구 열매가 많이 달려 있었다. 오늘이 유월 하순이니 조금 더 지나면 열매가 농익어서 절로 떨어질 것이다.


덕수궁에도 살구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그중에 제일 사람들의 눈을 끄는 나무는 석어당 앞에 있는 나무다. 3월 말 꽃이 필 때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4월 초에 석어당 2층이 개방되면 거기서 한번 내려다보면서 사진 한 장 찍어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 오래되었는데, 한 번도 올라가 가보지 못해 좀 아쉽다.


그런데 7월에 보면 이 나무보다는 입구 연못 쪽에서 담을 따라 끝까지 가면 거기 있는 살구나무에 더 많은 열매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 발길이 덜 닿아서 그런 가 하고 나 혼자 생각하고 있다. 어느 해인가 그 앞을 지나는데 위에서 살구열매가 내 앞으로 툭 떨어져서 놀란 일이 있다.

딸네 마당 살구나무에 열매가 많이 맺힌 것을 보고 우리 아파트 것은 상태가 어떤 가? 일부러 가서 보니 열매가 한 개도 없다. 혹 비, 바람에 다 떨어졌나 살펴봐도 바닥에 떨어진 흔적도 없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혹시나 해서 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복숭아나무도 열매가 없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는 매화에는 굉장히 부실한 매실이 몇 개 달려 있기는 하다. 꽃은 엄청 많이 아름답게 피어서 봄을 즐겁게 보냈는데, 왜 열매는 맺히지 않았을까?


과실수 착과가 안 되는 이유를 찾아보니 수분수가 없으면 인공수분을 해줘야 된다고 한다. 자두도 그렇다고 되어있고, 복숭아도 인공수분의 되어야 열매가 잘 달린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 정원에는 살구나무도 달랑 한 그루, 복숭아도 달랑 한 그루 있으니 수분이 안되어 열매를 맺지 않는 모양이다. 어릴 때 생각해 보니 집 마당에 자두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거기는 열매가 꽤 맺혔었는데... 더 찾아보니 자가 수분으로도 열매를 맺는 종류도 있지만 열매가 대부분은 부실하다고 한다. 맞다 어릴 적 집 마당 자두는 시고, 작아서 별로 인기가 없었다.


나이 칠십이 넘어서 알게 된 지식이다. 알게 되었다고 내가 내년에는 인공 수분을 해줄 수도 없는 일이고, 아파트 마당에 살구나무 몇 그루, 복숭아 몇 그루를 내 마음대로 심을 수도 없는 일이니 그냥 애 못 낳는 여인네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렇게 지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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