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을 사서 보지 않고 빌려보고 있다.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어느 날 우체국에 등기우편을 보내려 갔다가 보니 상가 같은 층에 구립 도서관이 있는 것을 알았다. 이 동네 3년이 넘게 살면서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인데,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도서관으로 들어가 회원 가입을 하고 책을 빌려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고 책을 사는 횟수가 줄지는 않았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과 사는 책은 조금 분야가 다른 책이어서 온라인 서점에서 보내오는 우편물이 그리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책을 빌려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온라인구매 시 발생하는 비닐 쓰레기가 늘 마음 한구석을 찝찝하게 하는 것도 한 이유이기는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생활용품, 식료품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도 엄청 많아서 요즘은 새벽 배송받는 유제품을 빼고는 가까운 마트에서 사고, 시장바구니를 쓰고 있다. 집에서 아이스크림도 받아먹을 수 있는 시대이니 언제 이 이 마음이 변해 주야장천 다시 온라인 쇼핑몰과 배달앱을 이용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은 반납하는 날짜가 있으니까 열심히 읽고 반납을 하는데, 내가 산 책은 찔끔찔끔 이것도 읽었다 저것도 읽었다 하면서 대여섯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다가 말다가 안 읽는 책들도 많다. 안 읽을 책을 왜 사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찔끔찔끔 읽는다고 안 읽는 것은 아니고 다만 천천히 읽는 것뿐이라 강변한다. 실제로 많은 책을 끝까지 안 읽고 방치하기도 한다. 책을 사는 이유는 꼭 읽겠다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읽을 필요가 있을 때 쉽게 찾아보기 위함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출판 불황이 오지 않을 것도 같다. 그런데 책장을 가끔 사도 늘 책 꽂을 장소가 부족하니 집 정리가 안되고 정신없다 욕먹어도 변명의 여지가 궁한 것도 사실이다.
백수 주제에 토요일 아침이라고 늦게 일어나서 늦은 아침 끼적거리다가 지난 목요일 빌린 일본 소설 반납하고, 주말 동안 읽을 소설을 빌리려 나갔다. 우리나라 소설이 꽂힌 서가에 가서 책을 찾으니 저자의 이름이 낯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10년 정도 소설이란 것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 이름 가나다 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내 눈높이에 딱 맞는 곳에 시옷, 이응 칸이 있다. 옆 서가에는 박경리, 박범신, 박완서의 소설이 꽂혀 있는데 허리를 구부리고 골라야 해서 포기하고 자리를 옮기니 성석제, 은희경의 책이 눈높이에 꽂혀있다. 그래서 성석제 장편소설 하나와 은희경의 단편소설집 한 권을 들고 나왔다. 은희경은 1959년생, 성석제는 1960년 생이니 나보다 조금 젊지만 같은 시대를 살던 작가들이어서 요즘 하늘을 날고 있는 한강보다는 훨씬 감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책을 펼치니 은희경의 1997년 작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이란 단편이 나온다.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 저편 나의 40대에 있었던 에피소드다. 요즘 젊은 이들이 보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일 수도 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토큰 판매 가게도 나오고, 전화 통화도 집전화로만 되고, 자동응답기가 새로운 문물처럼 나온다, 또 임신중절 수술이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처럼 비친다.
책을 덮고, 그 시절에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생각을 해보니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던 'Y2K 문제' 해결을 위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밀레니엄 버그, 세상의 종말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낭설이 횡횡했던 때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는 분 중에는 종말이 오면 구원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강원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던 분도 있었는데, 그 후 연락이 끊겨서 지금은 뭐 하시는지 모르겠다. '다미선교회'라는 모임에 속한 젊은이들이 미국 워싱턴 거리에서 하나님을 영접해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고 소리치던 모습도 떠오른다.
요즘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포도요법'이란 건강 프로그램이 그때부터 유행이 시작된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늘 20분쯤 늦게 가는 뻐꾸기시계를 알람으로 쓰는 장면이 나온다. 요즘은 거의 전 인류가 알람은 1초도 틀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PC통신 이야기도 나온다. 통장에 입금된 돈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에 간다면 MZ들은 뭔 소리인가 할 텐데... 참 세상 빠르게 변했다.
인터넷 서치해서 요즘 인기 있는 작가의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설마 요즘은 종이 소설책 같은 것은 나오지 않고 e-book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