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각나무 꽃향기

by 혼자놀기

노각나무에 무수히 꽃이 달렸다. 20년 전 이 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는 잘 자라지 않아서 마음이 쓰였던 나무다. 어느 해부터 쑥쑥 자라더니 이제는 정원수 중 큰 편에 속한다. 심지 않았는데 새들이 옮겨 놓은 산딸나무와 덜꿩나무도 그 옆에서 흰 꽃을 뽐내지만 그 향기는 따라가지 못한다. 찔레꽃 보다 더 진한 향기가 나는 꽃인데, 동백 지듯이 피어나면 곧 땅으로 떨어진다. 이 떨어진 꽃을 모아 그릇에 담아두면 방안에 향기가 진동했다. 그런데 올해는 무슨 일인지 거의 향기가 없다. 이제 수명이 다해 죽으려고 이러나? 별 생각이 다 든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노각나무 꽃 향기에 대한 말은 없다. 궁금하지만 두고 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집 앞 길건너에 핀 찔레꽃도 별로 향기가 안 난다. 내 후각에 문제가 생겼나? 아내에게 확인해 보니 자기도 냄새를 못 맡겠다고 한다. 무슨 일일까? 우리 집 근처 토양에 문제가 생겼나?

골목을 내려가 아래 마을에서 만난 찔레꽃에서는 진한 향기가 난다. 이것이 무슨 일일까?


한참 마을 길을 걸어 다니다 집에 돌아오니 조그만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유리창에 붙어 파닥거리더니 창문을 쪼아댄다. 저것이 벌써 몇 주째 저러고 있는데 유리를 깨려고 그러나?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전에 봤던 것보다 크기가 작다. 새끼가 부화한 것일까?


큰 소리를 내어 쫒아도 멀리 가지 않고 담장 밖 나무속에 숨는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또 날아와서 창문을 쪼아대는데 한 마리가 아닌 것 같아 내어다 보니 어미새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가 날아와서 쪼아대고 있다. 유리창 속에 잡아먹을 벌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럴까? 새끼들에게 쪼아대기 연습을 시키나? 그냥 둥지 근처 나무를 쪼아대지...


한참 보고 있으니 세 마리가 후루룩 상수리나무로 날아가 모습을 감췄다. 아 저기에 둥지를 틀고 부화시켜 나는 연습과 쪼기 연습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 집 창문에 반사되는 숲으로 날아가려 저리 애를 쓰는 모양이다. 이게 숲이 아니고 유리라고 써붙이면 알아먹을까?


제발 둥지 근처 나무로 가서 먹이 활동을 해라. 거기서 나무 쪼아 내는 소리에는 아무 이의를 달지 않을 테니 우리 집 창문은 제발 내버려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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