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슬런

by 혼자놀기

아마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것으로 생각된다. 아일랜드 출신의 의사이자 박물학자이다. 1660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753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당시로는 굉장히 오래 산 인물이다. 무슨 중요한 일을 했기에 여기 소개하는 것일까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것 같다. 1727년 아이작 뉴턴에 이어 영국왕립학회의 13대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에 이어 회장을 했다면 무언가 대단한 업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가 한 일 중 눈에 띄는 첫 번째 것은 초콜릿 우유를 제조하여 그것을 영국에 전파하였다. 초기 초콜릿 우유는 약제상에서 약용으로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는 1985년 25세의 나이로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는데, 박물학자이기도 한 그는 1687년 영국 해군의 어시스턴스 호를 타고 자메이카로 가서 채집 활동을 했다. 거기서 사탕수수 농장을 하는 부잣집 딸을 아내로 맞아 그 부을 이용 해 다른 박물학자가 모은 자료까지 다 샀다고 하는데, 일부의 학설은 커다란 사탕수수 농장의 젊은 미망인과 결혼해 아내의 많은 돈을 가지고 채집 활동도 하고, 사들이기도 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 세부 사정이 어찌 되었든 나의 관심이 아니니까 상관없고, 이렇게 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수집품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 발판으로 영국왕립학회의 회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것도 그를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는 아니다. 1753년 그가 죽으면서 그의 소장품을 정부에 무상으로 기증할 터이니 박물관을 세워달라고 했다. 당장 정부에 돈이 없으니 복권을 발행해 기금을 조달하여 무료로 개방하는 공공 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는데 이 박물관이 우리가 잘 아는 대영박물관이다. 대영박물관의 영어 이름은 Museum of Great Britain이 아니라 그냥 British Museum인데 왜 우리는 대영박물관이라 부르나 모르겠다. 아마도 일본이 그렇게 불러서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러고 있는 모양이다. 그 후 이 뮤지엄에 더 많은 기증이 이어지면서 슬런 컬렉션은 런던자연사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인 이 박물관은 오랜 자연 과학 연구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뒤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잔인한 노예제도가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는 것이다. 자메이카는 1655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서인도제도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기까지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가 1962년에야 독립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영국 식민지 중 최초의 독립이었다.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식민지였으니 얼마나 잔인하게 수탈을 했을지 짐작이 된다. 우리도 일본제국주의의 수탈을 36년 동안 받았으니까. 우리는 지금도 일본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어떨까 찾아보니, 입헌군주국에 국가 원수가 영국 국왕 찰스 3세이다. 이런! 밸도 없는 것들인지 공용어도 영어를 쓰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반민족친영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나 보다. K pop에 앞서 레게 뮤직을 세계에 전한 나라인데도 그렇다.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살짝 이해가 힘들다.


그나저나 요즘도 우리가 즐겨 마시는 초콜릿 우유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자메이카를 방문해서 보니 카카오 음료를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데, 그는 그것을 마시면 구역질이 나서 못 먹다가, 우유에 카카오를 타서 마시면 구역질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유럽에 초콜릿 음료를 소개하였다. 이재에 밝았다면 초콜릿을 만들어서 더 많은 돈을 벌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초콜릿 역사를 찾아보니 영국의 다른 사람이 이를 상업화해서 큰돈을 번 것으로 나온다. 한스 슬런 그는 의사이고 박물학자이고, 브리티시 뮤지엄을 있게 한 사람이고,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먹고 즐기는 초콜릿의 산업화에 바탕이 되어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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