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어서

by 혼자놀기

나에게는 아주 좋아하는 시 두 편이 있다. 하나는 지금은 거의 잊혀진 오래전에 돌아가신 시인의 것이고, 하나는 신경림 시인의 것이다. 두 편의 시가 모두 내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만난 시이다.

첫 번째 시는 김용호 시인의 시이다. 발표된 시가 아니고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유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탁상일기에 있던 미완성의 시이다. 제목도 없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현대문학인지 문학사상인지 대학 시절 꾸준히 읽던 월간 문학지에 시인이 돌아가신 후 특집으로 실린 것을 읽었다. 지금은 이 시인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1973년에 돌아가셨으니 50년이 넘는 일이다. 기억으로는 이 시가 유작(제목 없음)이라는 다소 이상한 제목을 달고 발표된 것은 사후 몇 년 지났을 때다.


내가 학부를 다니면서 의과대학을 계속 다닐지 말지로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엄청난 학습양과 전혀 인간적이지 못한 학교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고, 심한 좌절감에 있던 시기였다.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탁 뚫리고 앞이 보이는 느낌을 지금도 잊기 힘들다.


나는 그의 시를 외우고, 낭송하며 어려운 시기를 지났다. 친한 친구 몇 명은 아마도 내가 이 시를 낭송하며 술을 마시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용호/遺作 (제목 없음)


뭍에서도 배는 좌초하는가

물결은 여기선 바람이라고 하자.

무수한 바람의 이름

계절이 바뀌면

바람 빛깔이 바뀐다.

그 빛깔에 부딪치며 배는 좌초하고 있다.


- 1972년 5월 9일의 탁상일기에서



신경림 시인의 시는 아주 유명한 시이다. 새천년이 된 후 2-3년 지났을 때로 기억된다. 어느 신문에 아침마다 한 편의 시가 실렸는데 그때 읽고 스크랩해 두고 오래오래 다시 음미했던 시이다. 이 때도 대학 내에서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대학을 그만두고 나가서 개업을 할까 하며 고민했던 시기였다. 산다는 것이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말이 정말로 가슴에 푹 파고 들어왔다.



갈 대 - 신경림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이외에도 많은 시를 읽으며 지냈지만, 또 한편을 들라면 시집 한 권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인턴을 끝내고 1년 차 생활을 하던 때이다. 매일 당직과 응급실에서 지내면서 며칠 잠을 못 자기도 하고 내 힘으로는 어째 볼 수 없이 어린 목숨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프던 시절 내 책상 위에 놓여있던 시집이 한 권 있었다.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제주가, 성산포가 가보고 싶었다. 그곳을 한 번 갔다가 오면 일하기가 쉬어질 것 같고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 꿈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 성산포를 그리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어딘가 그 사진이 있기는 할 텐데 그동안 쌓아둔 내 인생의 잡동사니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디지털 컬러시대가 왔는데도 흑백 사진으로만 찍었다. 사진 속에 늘 죽음의 의미를 담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이었다. 아무 곳에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보며 절망했다. 이제는 세월이 지나 동기들의 죽음 소식을 자주 듣게 되었다. 심각하게 나의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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