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 열매

by 혼자놀기

이른 아침 마을을 걷다가 청설모 두 마리가 길에 내려와 도토리를 열심히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가도 신경 안 쓸 정도로 열심히 먹는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니 겨울잠을 잘 준비로 열심히 영양분을 축적하려는 것인가? 가만있자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는 것이 확실한데, 청설모는 추위에 강해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고 알고 있고, 겨울에도 집 앞 상수리나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먹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옆 길로 빠져나가려 하는데 그때 우리를 발견하고 잠시 옆 밤나무로 피하더니 우리가 지나가니 바로 내려와 다시 먹기 시작한다.

저수지 쪽으로 가보니 이제 연꽃도 끝물인지 피어 있는 꽃이 별로 없다. 그래도 수련은 제법 피어 있다. 곳곳에 연밥이 보인다. 연잎도 따고, 연근도 캐고, 연꽃도 따서 차 만들고 마을 사람들끼리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마을이 처음 조성되던 25년 전에 비하면 주민이 모두 초고령에 진입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을 한 바퀴 돌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까 청설모 놀던 곳에 가래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가래 열매도 청설모가 먹나? 하는 의문이 들어 다시 그 자리로 가 보았다. 비바람에 떨어진 도토리는 까먹은 흔적이 있는데, 떨어져 널려 있는 가래 열매는 건드린 흔적이 없다. 힘들게 두꺼운 껍질까지 않아도 도토리가 넘쳐나니 그럴 필요도 없겠다. 아직 다 익지 않고 떨어진 밤송이도 건드리지 않았다. 청설모도 가성비 좋은 것만 먹는가 보다.


가래 열매 네 개를 골라 바닥에 비벼 대충 껍질을 벗겨내니 알맹이가 나온다. 아직 완전히 익지 않고 비바람에 떨어져서 그런지 쉽게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다. 그냥 집으니 손 끝에 퍼런 물이 들어서 칡 이파리를 몇 장 따서 싸서 집으로 들고 와서 물로 씻어도 보고 솔로 문질러 봐도 깨끗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딸그락 거리는 소리 내면서 손 지압을 하시던 어른들 생각이 나서 나도 만들어 볼까 생각했던 것인데, 이거 괜한 짓을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물에 팔팔 끓여서 벗기면 잘 될 것 같아, 전기 포트에 넣고 끓였다. 끓기를 기다리는 중에 인터넷 들어가 가래 열매 가격을 알아보니 껍질 다 까서 말린 것이 킬로그램당 팔천 원이다. 그냥 살걸... 나이 칠십이 넘어도 늘 행동이 먼저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래도 처음부터 내가 만드는 것도 할 일 없는 백수를 위한 소일거리다 싶어서 끓인 열매를 물에 넣어 식혀서 솔로 문지르는데, 이번에도 깨끗이 까지지 않는다.


다시 한번 더 삶은 후 겨우 깨끗하게 했는데, 말려서 손에 잡아보니 뾰족한 부분이 꽤 아프다. 거기를 다듬고, 들기름을 바를까 하다가 눈에 띄는 바셀린을 발랐다. 반질반질해지고 제법 괜찮아 보인다. 색깔도 짖은 갈색, 요즘 유행하는 짙은 초콜릿 색깔이다.


작은 것 두 개를 골라 아내한테 쓰라고 줬더니 뜨악하게 바라보며, 오전 내내 한 일이 이것이냐는 표정으로 나는 쓰지 않을 것 같으니 당신 다 쓰란다. 칭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반응이 영 아니다.


오기로 오늘부터 양손에 가래 열매 쥐고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딸그락거릴 예정이다. 시끄럽다는 소리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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