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다리

by 혼자놀기

6.25 전쟁 때 끊어진 다리가 대표적으로 두 개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하나는 1950년 6월 28일 우리 군이 끊은 한강인도교가 있고, 다른 하나는 같은 해 겨울 유엔군 측이 끊은 대동강철교가 있다.

우리에게는 대동강 철교에 사람들이 들러붙어 있는 사진이 유명하고, 한강다리 사진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끊어진 대동강 철교는 종군기자 맥스 데스퍼가 찍어 1951년 퓰리처 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국 전쟁의 참상을 알린 대표적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훗날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남긴 말이 하나 있다. 거의 모든 전쟁은 종전일을 전승 기념일이니 패전일이니 하여 기념하고 각기 평화의 각오를 다지는데, 한국전쟁은 아직도 개전일을 기념하는데, 그 이유를 사람들에게 물으니 잘 모르더라고... 그 이유는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데, 당신네 한국인들은 그걸 잊고 사는 것 같다고 했단다.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게 아닌데 서론이 과하게 길었다.


나는 엉뚱하게도 끊긴 대동강철교를 목숨을 건 서커스처럼 타고 넘는 사진을 보면서 무너진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을 떠올리고는 한다.


며칠 전에도 소위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한 고등학생에 관한 뉴스가 나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사회는 그 원인을 의사들의 비윤리적 의료 행위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쪽으로 의사 사회를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사들은 이런 분위기에 부화뇌동하여 의사 사회를 향해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부르짖기도 한다. 윤리가 응급 환자를 살리는데 얼마큼 도움이 될까?


왜 어떤 병원도 환자를 받으려 하지 않았을까? 목숨을 걸고 서커스를 벌일 의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무너진 대동강철교 위를 걷고 있는 것은 피난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처한 상황이고, 의사 사회는 끊어진 다리 막다른 난간에 서있는 상태다. 환자도 의사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는데 다들 근본적 대응책을 찾기보다는 '나만 아니면 돼' '난 급하면 헬기 타고 서울대학병원으로 가면 돼'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들이 앞에 나서고 있으니 될 일이 없다.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야 출세하는 사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골라서 해야 성공하는 정치...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말아야 살아남는 공직자 사회...


결국 환자는 아프지 말아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의사는 아픈 환자를 보지 말아야 보신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의사 사회는 국가 주적의 공격보다는 몰염치한 정치 세력에 의해 무너질 것이고, 무책임한 공직자에 의해 밟힐 것이다.


국민 여러분!


아프지 마세요.


이것이 의사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 되었다.


그런데 개전 3일 만에 한강인도교를 폭파하고 도망간 대통령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한강인도교는 끊어진 것이 맞는데 그 옆에 피난민이 지날 수 있게 부교가 놓여있는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그런데 한강다리를 폭파한 공병대장은 사형당했고 아주 오랜 후에 무죄로 사면되었다. 사면되면 뭐 하나 이미 죽었는데.. 그런데 폭파를 명령한 사람은 없다. 이거야 원... 계엄을 선포하고 다 잡아 족치라고 한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마찬가지로 의료의 붕괴는 누구도 명령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자기도 죽는 줄 모르고 동의한 것이다.


그런데 끊어진 다리를 조사하다 보니 그때 한강에서 끊어진 다리가 한강인도교뿐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광진교도 그때 끊어졌는데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란다. 다리를 끊은 효과는 있었을까? 대체적인 평은 인민군의 남진 속도를 확실히 늦춘 효과가 있었는데, 한강다리는 불완전하게 끊겨서 철도를 보완해 인민군 탱크가 남진했다고 한다. 제대로 끊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명령을 수행한 공병단장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 세상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근본적 대책보다는 책임질 희생자를 만들어 다 뒤집어 씌우는 것이 일을 손쉽게 해결하는 방식으로 알고 있다.


이번 응급실 사태도 누군가가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데, 아무도 환자를 받지 않았으니 희생양을 특정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희생양을 만들려고 눈을 벌겋게 뜨고 날뛰면 의료시스템은 더 무너질 것이다.


이제 어쩌나? 이 사태의 원인을 책임질 사람은 이제 없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너! 이리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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