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 이야기

by 혼자놀기


시력이 점점 나빠져서 책 읽기가 불편해졌다. 남들 다 잘 사용하는 다초점 렌즈도 적응이 안 되어 근시안경, 책볼 때 쓰는 돋보기, 컴퓨터용 돋보기.. 기본 세 가지가 필요했는데 요즘은 그냥 근시 안경 하나만 끼고 다닌다. 그걸 썼다 벗었다 하다 보니 어디에 안경을 뒀는지 잊어먹고 찾아다니는 일이 잦다.


은퇴하기 전 일이니 7-8년 전쯤 일어난 일이다. 지인들과 아이슬란드 여행 가자고 해서 일정 준비하고 경비 다 지불하고 떠나는 일만 남았는데, 출근길에 보니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세상이 콱 찌그러져 있다. 출근하는 길로 안과 진찰을 받으니 황반천공이 왔단다. 노인들에게 이유 없이 온다고 수술이 필요하단다. 일정이 임박해서 여행 취소하고 환불도 제대로 못 받고, 수술받고 보름 동안 엎드려 지내야 했다.


수술 후에도 완전히 정상적으로 돌아오지는 않아서 아주 약간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지만 왼쪽 눈이 보조해 주니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외래로 다니다 보니 너무 늦게 발견해서 완전 실명 가까이 된 분들도 만났으니 나는 다행인 쪽이다. 수술 후 일 년쯤 지나니 백내장이 생겨 그것도 수술을 받았는데, 왼쪽 눈도 함께 하자고 했더니 쓸 수 있는 날까지 쓰시다가 오란다. 수술 후 8년째인데 아직도 왼쪽 눈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한쪽씩 비교하면 오른쪽이 더 밝게 보이지만 큰 불편은 없어 그냥 지내고 있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란 광고 간판을 단 안경점을 본다. 그런데 요즘 눈보다 기억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많다.


안경을 여러 가지 쓰다 보니 불편한 일이 많다, 근시 안경을 쓰고 벗고 하면서 일을 하는 때가 늘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디에 안경을 뒀는지 한참씩 찾는 일이 늘어났다. 한 번은 영화를 보다가 안경을 머리뒤로 돌려 끼는 사람을 봤다. 아 저거 편리하겠구나, 찾을 일도 없고.. 나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는 아무 곳에도 없는 안경을 하루 종일 찾다가 화장실에 가서 발견했다. 내 귀 뒤에 걸린 안경이 거울 속에 있었다. 이런... 그 이후로 이런 짓은 안 한다.


그런데 안경을 벗는 일이 잦다 보니 종일 벗어 놓고 있는 날도 있고, 여기에 적응해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불편하지도 않아 졌다. 그런데 자주 스마트폰을 보다 보니 안경을 더 자주 벗어 놓고 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사달이 났다. 버스에 앉아 제미나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내릴 곳에 와 보니 또 안경이 없다. 주머니 속에도, 가방 속에도 없다. 집에서 안 끼고 나왔나? 별 생각이 다 드는데 이건 제미나이에게 물어도 대답해 줄 수 있는 게 아닌데..


결국 집에다 두고 왔다고 결론을 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머리 위에서 안경이 툭 떨어진다. 모자 위에 끼워 놓고는 못 찾고 있었던 거다. 에효 이런 이런..


카톡이 하나 왔다. 만난 지 꽤 된 제자다.


'교수님 출근길에 운전하다가 건널목 건너시는 모습 봤습니다. 여전하시네요. 다음 주 행사 참석자 명단에서 교수님 성함 봤습니다. 그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여전? ㅎ 등만 구부러지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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