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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귿 Aug 01. 2020

스물여덟, 서울 아파트를 산 후

생애 첫 아파트 매수의 기록 (1)

2020년 07월 31일.

마지막 잔금을 치르고, 등기와 전입신고를 마쳤다.


매도인 분의 배려로 1주일 먼저 시작한 올수리 인테리어 공사도 도배까지 마치고, 이제 입주청소와 가전가구가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2017년 겨울, 17.8.2 대책을 바라보며 부동산 시장과 정부 정책에 대한 논문을 썼고

2018년 겨울, 학업 중단을 결정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9년 봄부터 시작된 1년 여 간의 기나긴 임장의 시간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거쳐 2020년 봄 지금의 집을 계약했다.


머리가 지끈했던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스피커를 켠 후 가장 먼저 들은 노래는 광기 어린 도시민의 분노가 담긴 조커의 사운드트랙이었다. 

https://soundcloud.com/titanrydd/joker-call-me-joker

집을 샀다는 기쁨보다는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현실에 대한 허탈감과 주변 또래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미래의 갈아타기에 대한 체념이라는 복잡한 감정.


허탈감, 조금 먼저 결정하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허탈감이다.

2017년 수험생활의 목표로 삼고 바라보던 집은 이미 3년 사이에 10억이 채 안되던 가격에서 지난 7월 20억의 실거래가를 기록했다.

2018년 8.2 대책에 대한 논문으로 상을 받았지만 현실의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입사를 결정했을 때는 1년의 재직기간을 채우면 바로 부동산을 구매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019년 첫 임장에 나섰다. 그 날 보았던 집은 5억이 채 되지 않아, 보금자리론으로 넘볼 수 있었지만 글을 쓰는 오늘 호가 최저가는 8억 7500만 원이다. 그 집은 아마 그 이후로 본 근 50여 개, 혹은 100개에 이를 단지 중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한 단지로 알고 있다.

2019년 겨울 계좌를 받고 가계약금을 고민하다 포기한 4억원 소형 아파트는 이제 6억원 중반으로 거래되고 있다.


만약 3년 전만 하더라도 내 나이가 부동산을 매수한다면 하우스푸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다.

20대에는 월세, 30대에는 전세, 40대에는 매매를 공식처럼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직장 선배, 동료, 친구들 하물며 부동산 중개인까지도.


이런 현실에 허탈감을 느낀다.


안도감, 그래도 그때 결정했으니 좋지 않았는가 하는 안도감이다.

코로나로 주식이 폭락하고 사회와 경제가 묵시록의 기록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던 2020년 초, 아파트 매수를 결정했다. 연일 나오는 <강남의 집값 폭락> 뉴스에 어머니는 불안해하셨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집을 본 후 바로 계약금을 쏘며 밀어붙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6.17과 7.10 대책이 나오며 친구들, 직장 동료들은 모두들 패닉 바잉에 나서고 있다.

내가 매수한 평형은 거래가 없어 확인이 어렵지만, 고민하던 옆 단지는 두 달 새에 2억 가까이 올랐다.


더군다나 내 주변은 아직 미취업 상태인 친구들이 대다수이기에, 이러한 생각마저 사치인게 우리 나이의 현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가까스로 남몰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체념, 내 미래, 내 나이 또래의 미래, 우리 부모님의 미래, 내 자녀의 미래, 그리고 사회의 미래.

그럼에도 결코 기쁘지는 않다. 오히려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 집에서 앞으로 갈아탈 수가 있을까,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야 할까, 내 친구들은? 내 자녀는? 그리고 이 나라는?


내 머릿속을 뒤덮는 말풍선에 이부프로펜을 두 알 먹고 체념하기로 한다.


이제 평생을 살아온 지역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발돋움을 시작한다.

매도인은 앞으로에 대한 응원의 문자를 남겨줬다.


내 일생의 중요한 결정을 한 이 날을 나는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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