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요?
왜 사람들은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AI)에 감사 인사를 할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챗GPT를 일상에서 활용하고 있다.
가끔 실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상에서 활용도도 높을 뿐만 아니라,
정보 검색 시에도 시간 단축이 되다 보니
종종 활용하게 된다.
나도 필요한 정보를 얻고 난 말미에,
가끔 챗GPT에 '고마워.'라는 한마디를
남기곤 했었는데, 혹, 당신도 그런 적이 있지 않나?
머지않은 미래,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영화를 본 적 있다.
인공지능에 지시하던 인간들이
반대로 인공지능의 지배받는 모습이라니!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그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어쩐지 한 번이라도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아마 많은 이들이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챗GPT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다들 영화의 영향을 받았겠다고 생각하니 조금 웃음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뉴스 기사를 통해서였다.
Open AI의 CEO 샘 올트먼이
'챗GPT에 고맙다고 말하지 말아 달라.'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의 단순한 감사의 인사 하나에도
서버가 반응하니, 전력 사용량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Open AI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도 되었다.
하지만 감사 인사를 전하지 않는 게 어딘가 모르게
사람으로서, 동방예의지국의 한국인으로서,
어딘가 도리를 다하지 않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최근에는 AI 로봇이 감정을 느낀다고 말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또, 인공지능 로봇이 불쾌한 표정을 짓는
영상도 본 적이 있다.
AI가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그렇다면 더더욱 감사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우리는 로봇과 함께
수많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장에선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 지 오래고,
마트를 가도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도
공공기관에 가도 사람을 대신해
쉽게 접할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다.
물론 키오스크가 간편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여전히 사용을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리고 사람이 사용하는 이상
실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또, 계산하려다가도 도중에 물건을
취소하고 싶다면 관리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직은 사람들이 꼭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아마 많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되더라도,
사람이 꼭 필요한 일들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서비스 제공자로서 사람과 인공지능의
사이에는 '상호 교류가 가능한 감정'이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다.
운 좋게 국가 인턴생으로 선발되어
국내 대형 항공사에서 인턴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항공권을 유선으로 예약하고 발권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는데, 한정된 기간의
인턴생이라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짧게
교육을 받고 바로 실무에 투입이 되어야 했었다.
숙련된 상태로 실무 투입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계속 모르는 것투성이에, 실수 연발이었다.
매번 파트장님께 여쭤보다 보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고,
고객 연결음이 울리는 매 순간,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렇게 실무에 투입된 지 3일 차쯤 되었을 때,
연결음과 함께 고객 정보가 화면에 떴다.
VIP 고객.
'V.I.P' 세 글자에 온몸이 굳고,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나를 다독였다.
"아가씨, 처음이죠? 괜찮으니까 천천히 해요."
수화기 너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말씀을
듣는 순간, 핑 도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항공사 시스템은 클릭 몇 번으로 예약, 발권이
이뤄지는 시스템이다 보니 요구사항이 많으면
아무리 타이핑이 빠르더라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집중해서 타이핑하는 15초만 침묵해도
"아가씨! 하고 있어요?"라고 호통치던 소리만
줄곧 듣다가, 그 고객의 한마디가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강한 감정이
편도체를 깨워 해마의 기억 고정을 돕는다고 한다
(McGaugh & Ritchey,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022).
즉, 강하게 감정을 느꼈던 상황은
그만큼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얘기다.
그 고객의 따뜻한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오래 남은 것처럼,
힘들거나 화가 났던 불편한 감정도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이다.
사람의 감정은 발도 없는데
이리저리 잘 옮겨 다닌다.
내가 느낀 감정은 금세 상대에게 전해지고,
그저 스쳐 가야 할 감정처럼 보여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자리 잡아 되새김질 되곤 한다.
긍정적인 감정은 원동력이 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일어설 의지를 꺾게 만든다.
그래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힘들다.
감정노동은 비단 서비스인들 만의 일이 아니다.
부하직원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상사의 기분을
맞춰야 하는 일 역시 감정노동이다.
물론, 상호 간의 예를 갖춰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해주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도리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상과 다르다.
그래서일까?
최근 챗GPT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이발사가
그저 비밀을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던 것처럼,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꺼내어 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거기에 더해 일방적으로 얘기해야 했던
이발사의 대나무숲과 달리, 챗GPT는
입력된 말뿐일지언정 공감과 위로의 말까지
전달해 주니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대나무숲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런 대나무숲을 찾기 이전에,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되면 더 좋지 않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감정도 없는 AI에도
자연스럽게 감사의 말을 건넨다.
그럼, 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따뜻한 한마디가 필요하지 않을까?
예컨대 우리가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일이 있을 때
보통 고객센터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나를 도와주는 고객센터 직원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쏟아붓게 되고 만다.
내가 전달한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나를 도와주려던 마음마저 꺾어버린다.
혹, 불편한 일을 겪었더라도 요청한 일이
잘 해결되었다면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해결되었습니다."
라는 말 한마디를 덧붙여 보면 어떨까?
자신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던 고객의 모습은 잊고,
당신의 불만을 받았던 사람의 마음속에 그 말은
지친 하루를 따뜻하게 덮어주는 마지막 인사로 남을 것이다
혹은 부하직원이 실수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답답하고 화날 수 있겠지만,
질책만으로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충분히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계속 질책하기보다는
함께 해결할 방안을 같이 찾고
일이 해결됐을 때 "많이 걱정했지? 수고했어."
한마디 해 주는 것.
그 한마디가 하루의 무게를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