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세요?

축하합니다! 그러면 당신도 모태 서비스인!

by 커뮤니케이터

한국에서 '서비스인(人)'이라고 하면,

대부분 직업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대표적으로는 승무원이나 호텔리어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다.


특히 이 두 직종은 유니폼을 입고 일하다 보니

가장 눈에 띄기도 하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인의

대명사인 만큼 아주 쉽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서비스는 직종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서비스인이기 때문이다.

관계 지향적인 한국 문화 특성상,

분위기 안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학생 때는 친구들,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분위기를 읽는 방법을 배우고,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할 때쯤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는 서비스인으로서 살아간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사장님과 손님들에게,

직장인이 되어서는 상사와 동료들에게 서비스한다.


혹, 직장을 다니지 않는 주부라 해도

예외는 없지 않을까? 아이가 있는 엄마라면?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상호 간에 이뤄지는

서비스는 오프라인에서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까지도 이뤄진다.

오프라인에서는 에티켓을, 온라인에서는

소위 말하는 네티켓(network+etiquette)을 지켜가면서 말이다.






서비스(service)라는 말은 라틴어인

서버스(servus)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본디 서버스는 하인이라는 뜻으로, 서버스에서

파생된 서비스는 '봉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본연의 뜻으로 해석해 보자면 인적서비스에

국한될 법한 말이지만, 의외로 한국에서는

'서비스'라는 말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예를 들어서 '서비스 좀 줘요!'라고 한다면

무상으로 제품을 제공해 달라는 뜻이다.

또, 보안업체에서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봉사의 의미보다는

철저한 보안을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서비스의 본질적인 뜻을 잊은 것이 아니다.

하인이 주인을 대하듯 고객을 섬기고자 했던

서비스업계의 노력은, 오히려 '고객은 왕이다!'는

인식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결과, 모든 상황에 왕대접을 받으려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서비스인들의 인격과 감정은

철저히 무시를 당해왔고,

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말없이 견디며 감정을 눌러온 이들.

속으로 삼킨 눈물은 차곡차곡 쌓였고,

고통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번져,

곪을 대로 곪아 끝내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선 '감정 노동자'라는 표현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감정노동자.


말 그대로 육체적인 노동과 더불어
자신의 감정을 느낀 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위해 생각과 표정을 조율해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감정과 행동이 어긋나는 불편함(감정부조화)과

그로 인한 지속적인 감정 소모를 빈번히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반복의 끝은,
결국 정서적인 문제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비단 서비스업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한국인들은 서로서로 나름의 봉사정신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다시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서비스인이지 않은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은 서비스 정신이

발휘되는 곳은 바로 직장이다.

상사의 시답잖은 농담에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는가 하면,

피드백이랍시고 상처를 주는 말에도

싫은 내색 없이 듣기만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5년 전, 일본의 호텔에서

인턴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일본어 자격증 취득을 위해 잠시

텔레마케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다.


개강 전 몇 개월 동안 그저 학원비를 벌 생각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고, 하고 싶은 일도 있어서

미안하지만 텔레마케터를 직업으로 삼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사장은 자신이 있던 서울에서는 '텔레마케터'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고소득을 올리는

엄청나게 전문적인 일이고,

잘 만 하면 서울로 상경시켜 주겠다며

매일 뻐겨대는 말들로 가스라이팅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누구보다 성실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전화번호들을 보며 무작위로 전화해

앵무새처럼 안내멘트를 쉴 틈 없이 읊조렸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도, 내 등뒤를 지나다니는

사장의 입에서도 쌍욕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20대 초반, 꿈 많은 나이에 매일같이

쌍욕을 듣는 일은 결코 무뎌지지 않았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일처리 방식에

분명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욕을 들었고,

급기야 사장은 비흡연자인 나에게

"다른 언니들처럼 너도 담배를 피워."라며 흡연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그저 학원비를 벌고 싶었을 뿐인데,

매일 시달리는 매출 압박과 견딜 수 없는 욕설,

보람 없는 일과 말도 안 되는 강요는

그만두고 나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법적으로 금지된 사회에서,

이런 강압적인 조직문화는 더 이상은 없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방식만을 고수하거나,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구성원의 의견을 묵살하는 조직문화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건재하는 꼰대문화이며,

조직의 성장을 가로막는 병폐이기도 하다.

그저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만이 꼰대문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런 문화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겪어온

나로서는 어쩐지 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성장을

저해하는 꼰대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어쨌든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 않겠는가.

나쁜 문화는 위아래로도 좌우로도 세습할 필요가 없다.

직장 내에서 뿐만 아니다.

어떤 관계 속에서든, 내가 행한 태도는

어떻게든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서비스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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