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고 대학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상공업의 도시다. 60만 규모의 글래스고는 영국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영국 사람들은 글래스고 출신의 사람을 글래스위전(Glaswegians)이라고 부른다. 한편 유럽의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과도한 사망률과 질병률로 인하여 붙여진 글래스고 현상이라고 불리는 고유명사도 있다.
18세기 당시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중심이었다. 18세기 이후에는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의 대서양을 오고 가는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글래스고를 비롯하여 인근 도시까지 급속한 성장을 가져왔다. 화학, 섬유, 공학을 비롯하여 조선, 해양 선박은 세계 최고 중의 하나였을 정도로 잘 나가는 도시였다. 빅토리아 및 에드워드 시대에는 글래스고를 영제국의 제2의 도시로 불릴 만큼 주목받던 도시였다. 그뿐 아니라 글래스고 대학은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451년 개교한 글래스고 대학은 6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대학으로 리서치 파워하우스(Research Power House)로 불릴 만큼 영국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학이다. 글래스고 대학이 개교할 당시 잉글랜드에는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이 있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는 잉글랜드와 같은 수준의 대학이 있기를 원했다. 제임스 2세는 교황 니콜라스 5세에게 글래스고의 월리엄 턴불 추기경(Bishop William Turnbull)이 대학을 설립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이후 1410년 설립되어 1413년 교황 베네딕트 13세에게 인가를 받은 스코틀랜드 최초의 대학인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이 탄생한다. 첫 대학 설립 한 다음 40년 후에 스코틀랜드 두 번째 대학이 개교하게 된다. 그 대학이 글래스고 대학이다. 영국 전체로 보면 영국에서 네 번째 설립된 대학이자,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대학이다.
대학의 설립의 오랜 시간만큼 건물 외형도 묵은 시간이 느껴진다. 대학 건물 외벽에는 <사람들은 글래스고를 만든다(People make Glasgow)>라는 글귀가 있다. 대학이 지역의 가치를 얼마나 크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문구다. 요즘처럼 글로벌 표준이니 신자유주의니 뭐니 하는 세상에 지구적인 사람이 되라는 구호보다 글래스고 사람은 글래스고를 만든다는 구호는 그들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대학 캠퍼스 계단에 교수와 학생들이 계단에 앉아 자유롭게 토론 수업을 하는 모습에서 글로스고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