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라디오 관련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지 벌써 몇 년 째다.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쓰려고 했던가? 왜 몇 해 동안 계획만 세워놓고 망설였던가?' 이어지는 생각 속에서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변명을 하자면 공동체라디오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두 가지 면에서다. 하나는 실제로 공동체라디오 활동을 하다 보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퇴근 후에도 공동체라디오를 포함해 마을공동체미디어 관련된 문제들과 아이디어들로 머릿속이 꽉 차있으니 책 쓰는 게 늘 뒤로 미뤄지기 십상이다. 핑계에 가깝고 시간 관리를 못한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핑계를 대고 보니 내 부족함을 실토한 꼴이다. 또 하나는 도대체 공동체라디오에 대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감이 잘 안 잡혔다. 머릿속엔 이런저런 걸 써야겠다는 생각들이 오가는데 모호한 느낌이었다. 누가 읽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읽는다고 도움은 될 것인가 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18년 이상 공동체라디오를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헤매고 있고, 내놓을 것 하나 없는 데 대체 무슨 책을 쓴다고 하는 마음도 있다. 책으로 내놓을 정도로 공부가 안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이게 그동안 책을 쓰지 못한 실제 이유일 것이다. 또 하나 있다면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데 자신이 없었다. 마이크 앞에선 주저리주저리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생각을 담아 글로 표현한다는 것엔 왠지 망설여졌다. 짧은 글 하나 쓰는 데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한나절을 다 보내도 맘에 드는 글 하나 완성하지 못할 정도로 글 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정리도 안되었는데 거기에 글솜씨마저 부족하니 선 듯 시작하지도 못하고 이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게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단 그동안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쓰려고 한다. 마포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벌써 20년이 가까워오니 이제 기억도 가물하고, 자료도 사라진 것이 더 많다. 더 늦췄다간 안 되겠다 싶기도 하고. 보잘것없는 기록이지만 뒤에 시작하는 이들에겐 이것도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 하는 작은 바람도 들고. 18년의 경험을 그냥 묵혀두는 것도 아쉽고 하다.
공동체라디오 18년은 정말 좌충우돌의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다 보니 공동체라디오가 어떤 매체 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건 공동체라디오방송사업자만이 아니라 정책당국도 마찬가지였다. 책과 강연에서만 보던 공동체라디오가 현실에 튀어나왔으니 직접 겪으면서 만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없던 길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이럴까? 안갯속을 헤맨다는 느낌이 이럴까? 그렇게 더듬더듬 걸어온 길이 어느덧 18년이니 이제 길이 보일만도 한데 여전하다. 그나마 희미하게라도 길이 보이는 듯하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18년을 했는데 아직도 길이 제대로 안 보인다면 문제라고 해야 할까?
최근 '커뮤니케이션 권리'라는 개념이 미디어운동 진영에서 제기됐다.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라는 연대조직에서 2020년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강화를 위한 미디어 정책'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전혀 낯선 개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알려져 있는 개념도 아니다. 아니 잘 알려져 있지 않다기보다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게 맞을 것이다. 공동체라디오를 포함해 마을공동체미디어가 활성화가 안 되는 이유엔 그 철학적인 근거가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정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적이고 정책적인 근거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정작 당사자인 공동체라디오 활동가 조차도 그 철학적 바탕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책당국이나 국회의원들을 만나면 늘 답답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었다. '왜 공동체라디오가 중요한 지 모르지?' 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이를 풀어버릴 철학적, 정책적, 논리적 근거를 스스로도 정립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한계라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권리는 그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단비와도 같았다. 물론 지금도 커뮤니케이션권리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라디오의 철학적, 정책적 배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권리에 대해 잘 정리해보려는 것도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중 하나이다. 물론 내가 연구자는 아니기 때문에 이미 연구된 자료를 바탕으로 잘 소개해보는 정도 일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21년 신규공동체라디오 허가를 추진한 것도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2004년 공동체라디오 8개를 허가한 이후 16년 동안 공동체라디오 신규허가가 없었다. 2007년 예비사업자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실제 허가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공동체라디오의 제도나 환경이 개선된 것도 거의 없었다. 정책도 변한 게 없다. 다만 신규공동체라디오를 허가하겠다는 의욕만이 있었다.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때문이다. 마을공동체미디어가 서울을 필두로 해서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이와 더불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역에 밀착된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규허가가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현재 공동체라디오의 현실이 만만치 않은 때문이다. 18년이 된 초기 공동체라디오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정책적인 개선 거의 없이 신규 공동체라디오를 도입하겠다니 이해가 되지않는다. 16년 동안 맨땅에 헤딩하듯이 직접 경험하면서 해답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신규공동체라디오에게 똑같은 경험을 감당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먼저 길을 나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마포fm이 직접 부딪히면서 쌓아온 경험이 비록 얼마 되지않지만 뒤에 오는 누군가에겐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일단 시작해보자! 공동체라디오를 그렇게 시작했듯이 하다 보면 방안이 보일 것이다. 공동체라디오는 법인 스스로는 가진 게 하나 없는 미디어다. 여기서 법인이라 한 것은 서류상으로 기록된 부분을 가리킨다. 1년 총예산이 2~3억 정도밖에 되지 않고, 상근인력도 2~3인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사실 조직을 유지하기에도 벅찬 규모다. 재정도, 인력도 늘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다. 뭘 하나 해보려 해도 이를 추진할 내부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으로 망설이다 보면 뭐 하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공동체라디오를 한다는 건 일단 뭔가라도 시작하고 보는 것이었다. 이 책을 쓰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일단 시작해보고 그러다 보면 길이 조금씩 보였던 것처럼 이 책도 윤곽이 잡힐 것이다. 길을 잘못 접어들어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때 다시 시작하는 길은 처음 나섰던 그 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