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라디오의 간단한 역사

by 송덕호

우리나라 공동체라디오는 2004년 시범사업으로 도입되었다. 당시 대통령 직속기구인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제5차 방송통신정책협의회를 열어 소출력FM라디오방송을 활성화하는 방안에 합의하였다. 가용주파수 등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 함께 검토하고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같은 해 6월 시험서비스를 통해 기술적, 제도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토하였고, 9월 방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영리 지역밀착형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확정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동체라디오방송은 시작되었다. 이 당시 명칭은 ‘지역밀착형 소출력FM라디오방송국’이었다.


공동체라디오, 즉 소출력FM라디오방송은 사실 2002년 서울월드컵이 도입에 큰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 경기 기간 중 경기장을 중심으로 내국인과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교통정보, 관광지 및 경기장 소개, 월드컵 문화 소개, 일기예보와 숙박안내 같은 각종 정보를 제공할 목적이었다. 월드컵 경기 중계나 공지사항을 알리거나 월드컵 경기 운용요원을 통제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출력 1와트 이하로 1개 시설 및 행사에 하나의 주파수를 허가하는 방안이었고, 체신청장이 실용화실험국으로 허가하는 것이었다. '미니FM'이라고도 불렸던 '소출력FM 안내방송'은 방송위원회 절차를 생략하고 60일 안에 신속한 허가가 진행하는 것으로 허가 유효기간이 1년인 한시적 방송이었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중에 실제 실시되지는 못했다. 월드컵 경기 중계료가 너무 높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관련 정책에 대한 법적 절차는 2002년 12월에 개정된 전파법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되었다. 소출력FM안내방송은 정보통신부가 주도하였는데 포화되어 있는 FM 주파수를 효율적으로 재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민편익을 증진키 위하여 관광지, 경기장, 전시장 등에서 각종 안내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출력 FM 안내방송 제도의 도입을 추진해 온 것이다.


공동체라디오방송이 시작된 좀 더 먼 배경엔 정권교체로 인한 지방자치제도의 확대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는 1989년 노태우정권이 지방자치 실시라는 공약을 실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초기 지방자치제도는 단체장은 선출하지 않고 지방의원만을 선출하는 불완전한 형태였고, 김영삼정권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1995년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지방자치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가지고 그 지방의 행정사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단체자치와 주민자치가 결합된 것이다. 쉽게 말해 지역의 일을 그 지역이 직접 처리한다는 것으로 그 주체는 지역주민인 것이다. 이에 따라 주민들에게 지역과 관련한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 지역이슈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고 공론장을 조성해 지방자치활동에 주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할 지역매체의 필요성이 커졌다. 참여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제도를 실현하고 지역의 발전을 이끌어 내야 할 시대적인 필요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적은 자본으로 설립과 운영이 상대적으로 쉬운 소출력FM라디오방송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는 소출력FM라디오의 지역매체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방송위원회는 2003년 방송법 개정안에 '소출력지상파라디오방송사업자'라는 개념을 포함하였다. 이는 국민의 정부 국정과제(1998. 6.)였던 '관광․산업단지의 안내방송 및 지역특성이 강한 지역의 소출력지역FM라디오방송 신설 확대'를 추진한 것이었다. 하지만 2001년 지역방송은 국정과제에서 제외되고 정통부의 안내방송만이 남게 되었다.


2004년 10월 방송위원회는 '출력 1와트로 반경 5킬로미터'를 방송권역으로 하는 '소출력FM라디오방송시범사업자'를 모집하였고, 여기에 전국에서 15곳이 신청하여 8곳이 최종 선정되었다. 같은 해 11월 선정된 사범사업자들은 2005년 3월 개국 일정으로 방송을 준비하였고, 이 과정에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간에 '소출력FM라디오'의 관할권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보통신부는 전파법시행령에 따라 출력 1와트는 정보통신부의 관할이라 주장하였고, 방송위원회는 '편성'의 개념이 들어가는 방송의 관할은 방송위원회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시범사업자들을 모아 놓고 '정보통신부 관할사업으로 들어오면 잘 해주겠다'고 노골적으로 설득하기도 하였다. 이 싸움은 몇 달에 걸쳐 진행되었고, 정보통신부가 주파수 허가를 내주지 않아 개국은 계속 늦어졌다. 지리한 줄다리기도 여름을 지나면서 마무리되었고 8월 대구 성서공동체FM을 선두로 8개 공동체라디오방송국들이 순차적으로 개국하였다.


이렇게 1년 단위로 시작한 시범사업은 2009년까지 몇 해를 거듭 연장되었다. 방송위원회가 시범사업자를 모집할 때 '출력 1와트로 반경 5킬로미터'를 방송권역으로 한다고 발표햐였으나 실제 방송권역이 반경 1킬로 내외에 불가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출력을 증강하여야 했으나 출력증강의 주무부서인 정보통신부가 '인접 방송국에 혼신과 잡음이 우려'된다며 허가하지 않아 추진되지 않았다.

2007년엔 공동체라디오 관련 조문이 방송법에 포함되면서 법제화가 되었고, 2009년 계속 연장되었던 시범사업이 종료하고 비로서 정규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때 전남 나주가 정규사업에서 탄락하여 사업자는 7개로 줄어들었다.


시범사업과 관련한 좀 더 자세한 역사는 뒤에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선 공동체라디오방송이 15년이 넘도록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2004년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을 하기 전에 여러 차례 진행되었던 소출력FM라디오 연구결과에 따르면 1와트로 반경 1~2킬로미터를 방송권역으로 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경기나 행사를 목적으로 하는 안내방송인 미니FM에 적합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반경 5킬로미터는 불가능하였고, 단지 장애물이 없는 개활지나 바다 같은 곳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방송위원회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시범사업자와의 간담회나 설명회 때 시범사업이 끝나고 나면 출력을 증강하겠다고 언급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주파수를 관할하는 정보통신부의 영향력을 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주무부서인 방송위원회가 공동체라디오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15년이 넘은 지금도 잘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공동체라디오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정책을 마련했어야 했으나 관련된 정책은 전혀 세워지지 않았다. 공동체라디오 시범사업 기간 4년 동안 시범사업 연구를 여러 차례 추진해 활성화 해법은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되었으나 정책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후 2008년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로 정권이 넘어간 이후 박근혜정부까지 10년 간은 완전하게 방송정책에서 외면 받아 왔다. 이 당시 공동체라디오를 대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입장은 '스스로 살 수 있으면 살고, 아니면 문 닫든지' 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문재인정부로 들어서 공동체라디오가 국정과제에 포함되었고 공동체라디오의 핵심적인 이슈에서 조금씩의 개선이 있기는 했으나 '공동체라디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역시 중장기적인 정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2019년 역시 활성화를 위한 연구반이 꾸려져 보고서를 내놓긴 했으나 반영된 것은 미비하고 종합적인 정책은 다시 이후 과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공동체라디오 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네라디오’라고 이야기 하거나, ‘출력이 작은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단편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공동체라디오도 총체적으로 이해했을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종합적인 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공동체라디오에 대해선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정책결정권자 대부분이 그저 '작은 라디오'로만 이해하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바로 이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고,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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